이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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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 각찬(角粲)
- 이벌간(伊罰干)
- 일벌간(一伐干)
- 우벌찬(于伐飡): 정덕본에 간(干)으로 쓰여있다. 간(干)을 우(于)의 오기로 본다.
- 서발한(舒發翰)
- 서불한(舒弗邯)
- 자분한지(子賁旱支)
- 조부리지간(助富利智干): 비슷한 형식의 호칭으로 이사지우(爾師知于)[1], 기부리지가(己富利知加)가 있다.
- 주다(酒多): 수블(酒)+하(多). 다만 이쪽은 시기상 맞지 않아서 민간어원일 가능성이 높다.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뿔"이라는 뜻의 고유어를 비슷한 음이나 훈의 한자로 표기한 것인 듯. '이벌, 우벌, 서발, 서불'은 '각'에[3], '찬, 한'은 '간'에 대응한다. 당시 한국어의 음차에 쓰인 상고한어 및 중고한어 한자들의 발음을 참고할 때, 많은 현대 한국 발음의 ㄹ 받침이 고대에는 [t] 음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에[4], '서'가 [s] 발음이고 '벌~블(>불)'의 말음이 본래 [t]였고 '간/한'은 [kan]이었던 것으로 본다면 당대 발음은 [spət.kan] 정도였을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시대에 이벌찬이 처음 제정됐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2~3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17관등으로 정립된 건 법흥왕 때로 보는 편이다.
자색 관복을 입었으며 신라에서는 오직 진골 이상이어야 오를 수 있었다. 골품제 참조.
초창기 신라에서 각간에 오른 사람들이 하나같이 병부령을 겸했다는 점 때문에 원래는 병부령과 같은 업무를 하지 않았는가 추측된다.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시대에 이벌찬이 처음 제정됐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2~3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17관등으로 정립된 건 법흥왕 때로 보는 편이다.
자색 관복을 입었으며 신라에서는 오직 진골 이상이어야 오를 수 있었다. 골품제 참조.
초창기 신라에서 각간에 오른 사람들이 하나같이 병부령을 겸했다는 점 때문에 원래는 병부령과 같은 업무를 하지 않았는가 추측된다.
2.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이벌찬에 오른 사람들 [편집]
[1] 우(于)는 간(干)의 오기로 보인다.[2] 만가리타로(萬加利陁魯)[3] '서발, 서불'이 뿔 '각(角)'에 대응되는 것에 착안하여, '서발, 서불'이 '뿔'의 중세 국어 'ᄲᅳᆯ'의 고형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렇게 볼 경우 'ㅽ'의 앞 'ㅅ'은 단순한 된소리 기호가 아니라 실제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4] 김지형 등의 주장. '[t]->ㄹ'의 예로 삼국시대 지명 가지나(加知奈)를 가을내(加乙乃)라고도 하는 것, 인명 구례(久禮)를 구지(久遲)라고도 하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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