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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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敦萬
1948년 08월 09일 ~
1. 개요 [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영천(永川).
1948년 전라남도 광양군 골약면 중동리 중촌마을[1]#에서 태어났다. 순천고등학교(16회), 전남대학교 정치학과,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미국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재미교포지 독립신문 편집국장, 한국민주협회 의장, 민청연합 미주본부 대표위원, 필라한국인권문제연구소 회장 등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1년 신민주연합당 중앙정치연수원 부원장을 지냈다. 같은 해 상공위원회에 소속된 민주자유당 박진구, 평화민주당 이재근 의원과 함께 전성원 자동차공업협회회장(현대자동차 사장)으로부터 뇌물성 외유를 지원받아 간 이유로 사법처리되었다.
결국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통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동광양시-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명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48년 전라남도 광양군 골약면 중동리 중촌마을[1]#에서 태어났다. 순천고등학교(16회), 전남대학교 정치학과,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미국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재미교포지 독립신문 편집국장, 한국민주협회 의장, 민청연합 미주본부 대표위원, 필라한국인권문제연구소 회장 등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1년 신민주연합당 중앙정치연수원 부원장을 지냈다. 같은 해 상공위원회에 소속된 민주자유당 박진구, 평화민주당 이재근 의원과 함께 전성원 자동차공업협회회장(현대자동차 사장)으로부터 뇌물성 외유를 지원받아 간 이유로 사법처리되었다.
결국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통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동광양시-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명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 영천 이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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