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군(1589)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조선 선조의 왕자
의창군
義昌君
의창군(義昌君)[1]
경헌(敬憲)
전주(全州)
광(珖)
장중(藏中)
기천(杞泉)
부왕
생모
인빈 김씨(仁嬪 金氏)
부인
양천군부인 양천 허씨(陽川 許氏)
생몰
기간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
목차
1. 개요2. 생애3. 사망과 이후

1. 개요 [편집]

조선 선조의 서8남으로 후궁 인빈 김씨에겐 4남이다. 의안군신성군, 정원군의 친동생이다.

2. 생애 [편집]

어머니 인빈 김씨가 선조의 총애를 받았고, 또한 총명해서 아버지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15세 되던 1603년(선조 36년) 4월에 혼인하였다. 부인은 양천 허씨로, 허난설헌의 오빠이자 허균의 형인 허성의 딸이다. #

1608년(광해군 즉위년) 광해군이 즉위하고 유영경의 옥사가 마무리된 후 정운원종공신 1등(定運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의창군은 광해군폐모살제를 안좋게 생각하여 폐모살제를 결정하는 회의에도 불참하였다. 이에 유학 지차택이 그를 처벌할 것을 주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618년(광해군 10년) 처숙부 허균의 역모 사건 때 추대되었다는 죄목으로# 작호를 박탈당하고 경기도 내 모처에[2] 위리안치되었다.[3]#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작호를 회복하였다. 이후 인조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종친으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살았다.

3. 사망과 이후 [편집]

1645년(인조 23년) 사망했다. 향년 56세.[4]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어머니 인빈 김씨의 묘소인 순강원 권역에 있다.
[1] 군호는 경상남도 창원의 옛 지명인 의창(義昌)에서 유래했다[2] 실록 원문에는 ‘기읍(畿邑)’이라고 되어있다. 기읍은 ‘경기도 내의 고을’이란 뜻으로, 의창군의 정확한 유배지는 적혀있지 않다.[3] 圍籬安置. 귀양간 곳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심고 그 안에 죄인을 가두는 형벌.[4] 세는나이 5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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