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갈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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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飮葛文王(? ~ ?)
신라의 왕족. 선덕여왕의 남편이다. 즉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국서(여왕의 남편).
삼국유사에 실린 선덕왕지기삼사 이야기에서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보냈을 때 선덕여왕이 "이것은 당나라 황제가 내가 남편이 없는 것을 비웃은 것이오."라고 발언한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같은 삼국유사의 왕력편에서 선덕여왕의 남편이 음갈문왕이라고 적혀있다. 음갈문왕에 대한 기록은 이거 하나가 끝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보냈을 당시에 음갈문왕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을 수 있다.
본명이 '음(飮)'으로 추정되기도 하며[1] 여왕의 남편이라서 갈문왕에 책봉된 듯하다.
조선시대의 지리지 동경잡기 간오(刊誤)에 '선덕여왕의 남편은 갈문왕(葛文王) 김인평(金仁平)이고, 진덕여왕의 남편은 갈문왕(葛文王) 김기안(金基安)이다.'라는 기록이 있다.[2]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음갈문왕의 본명은 김인평(金仁平)이 되지만, 동경잡기는 19세기 기록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인평은 선덕여왕의 연호로 한번 쓰인 것이므로[3], 삼국유사 왕력편의 사료 오독일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기안(基安, 정덕본 삼국유사에서는 其安)은 김국반의 시호 진안(真安)의 오기고 왕력편에서 진덕여왕의 남편은 확인되지 않는다.
신라의 왕족. 선덕여왕의 남편이다. 즉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국서(여왕의 남편).
삼국유사에 실린 선덕왕지기삼사 이야기에서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보냈을 때 선덕여왕이 "이것은 당나라 황제가 내가 남편이 없는 것을 비웃은 것이오."라고 발언한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같은 삼국유사의 왕력편에서 선덕여왕의 남편이 음갈문왕이라고 적혀있다. 음갈문왕에 대한 기록은 이거 하나가 끝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보냈을 당시에 음갈문왕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을 수 있다.
본명이 '음(飮)'으로 추정되기도 하며[1] 여왕의 남편이라서 갈문왕에 책봉된 듯하다.
조선시대의 지리지 동경잡기 간오(刊誤)에 '선덕여왕의 남편은 갈문왕(葛文王) 김인평(金仁平)이고, 진덕여왕의 남편은 갈문왕(葛文王) 김기안(金基安)이다.'라는 기록이 있다.[2]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음갈문왕의 본명은 김인평(金仁平)이 되지만, 동경잡기는 19세기 기록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인평은 선덕여왕의 연호로 한번 쓰인 것이므로[3], 삼국유사 왕력편의 사료 오독일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기안(基安, 정덕본 삼국유사에서는 其安)은 김국반의 시호 진안(真安)의 오기고 왕력편에서 진덕여왕의 남편은 확인되지 않는다.
2. 일설 [편집]
음(飮)과 반(飯) 글자가 비슷해서 일연이 오기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있는데 삼국유사 원문에서 欠의 첫 획과 세 번째 획이 매우 인접하여 있어 전체적으로 反에서 3번째 획이 빠진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름에 반(飯) 글자가 들어가는 김국반, 김백반[4] 둘 중 하나를 음갈문왕과 동일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만약 선덕여왕의 배우자가 성골이 아니라면 선덕여왕의 여동생인 천명공주처럼 왕위 계승 순위가 한참 밀렸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고, 잘 보면 선덕여왕이 추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뒤에 나오는 진덕여왕의 외할아버지와 다르게 "추봉"이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 이후 또다른 여왕인 진성여왕의 남편 김위홍의 설명을 봐도 "추봉"이라는 글자가 명확히 드러나 진성여왕 재위기간에 추봉이 이뤄졌음과 교차검증이 된다. 즉 이미 진평왕에 의해 갈문왕으로 책봉된 기록이 있는 김백반, 김국반이 음갈문왕일 가능성이 높다.
- 음갈문왕이 김국반, 김백반은 물론 진평왕의 다른 동생도 아니라는 설: 음(飮)이 반(飯)의 오기가 아니고 진짜로 음갈문왕이 정확한 명칭이었다면 음갈문왕은 김국반도, 김백반도 아닌 별개의 인물이다. 상술한 동일인 추측은 음(飮)이 반(飯)의 오기라고 가정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기가 아니었으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또한 음갈문왕의 음(飮)이 본명과 무관한 글자일 수도 있다.
[1] 갈문왕 작호에서 갈문왕 앞에 붙은 글자는 이름인 경우가 많다.[2] 출처는 충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김수태(金壽泰)의 1997년 논문 '有懷堂 權以鎭의 「東京雜記刊誤」'에서 나온 내용이다.#[3] 황제의 칭호로서 선덕여왕은 인평제(仁平帝)가 된다. 따라서 김인평과 선덕여왕은 동일인물.[4] 모두 진평왕의 남동생들로 선덕여왕의 숙부이다.[5] 다만 삼국유사 제작 당시 이미 기록이 파편화되어 원래는 같은 인물임에도 다른 인물로 오인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국진안갈문왕에서 시호인 "진안"을 빼고, 음갈문왕을 반갈문왕으로 바꾼 뒤 이름을 한 글자씩 합치면 정확히 "국반"이 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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