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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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38년 전라북도(현재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용문고등학교 졸업 후 연세대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루스벨트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미국의 일리노이 주 주정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금산군-대덕군-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이준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선친 유진산 직계 출신인 이민우, 유치송 등이 만든 계보인 견지동우회에 속하였다. 1979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는 이민우 등과 김영삼을 지지하였으며,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사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한국당 당기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2년 신상우의 뒤를 이어 민주한국당 사무총장이 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신한민주당 내에서 신보수회라는 당내 계보를 만든 다음 1986년 신보수회 소속 국회의원 중 일부와 함께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약칭 민주당)을 창당하고 자신은 총재가 되었다. 1987년 통일민주당이 창당하고 나서 민중민주당은 다시 신한민주당에 흡수되어 신한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그 해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김영삼 지지를 선언하였다.
1988년 다시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1년 최형우가 정무제1장관이 되자 공석이 된 대한민국 국회 동력자원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국민당 정태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충청남도 논산시-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김범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 예비순번에 들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승계하였다.불사조 이인제의 지역구 선배인데 6선 1패의 후배에 비해 4선 뒤 2패라는 점에서 한수 딸린다. (이인제는 금산 지역구에서 4선 1패) 그래도 승계로 5선을 채웠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인제의 지역구 선배라는 것도 그냥 농촌지역 인구 감소로 선거구가 통폐합된 결과에 불과하다. 이인제는 논산에 기반하고 있고 유한열은 금산 기반이다. 실제 유한열이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유가 인구가 더 많은 논산에서 고작 8% 득표에 그치고 상대인 김범명 후보가 논산표를 다 가져가서...(...)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금산군-대덕군-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이준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선친 유진산 직계 출신인 이민우, 유치송 등이 만든 계보인 견지동우회에 속하였다. 1979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는 이민우 등과 김영삼을 지지하였으며,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사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한국당 당기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2년 신상우의 뒤를 이어 민주한국당 사무총장이 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신한민주당 내에서 신보수회라는 당내 계보를 만든 다음 1986년 신보수회 소속 국회의원 중 일부와 함께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약칭 민주당)을 창당하고 자신은 총재가 되었다. 1987년 통일민주당이 창당하고 나서 민중민주당은 다시 신한민주당에 흡수되어 신한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그 해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김영삼 지지를 선언하였다.
1988년 다시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1년 최형우가 정무제1장관이 되자 공석이 된 대한민국 국회 동력자원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국민당 정태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충청남도 논산시-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김범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 예비순번에 들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승계하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인제의 지역구 선배라는 것도 그냥 농촌지역 인구 감소로 선거구가 통폐합된 결과에 불과하다. 이인제는 논산에 기반하고 있고 유한열은 금산 기반이다. 실제 유한열이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유가 인구가 더 많은 논산에서 고작 8% 득표에 그치고 상대인 김범명 후보가 논산표를 다 가져가서...(...)
2.1.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 [편집]
3. 성씨 [편집]
4. 선거이력 [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78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3선거구)[3] | 52,135 (33.39%) | 당선 (2위) | ||
1981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4선거구)[4] | 65,635 (40.53%) | 당선 (2위) |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대덕/금산/연기) | 45,712 (32.67%) | 당선 (2위)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금산) | 무소속 | 14,922 (32.58%) | 당선 (1위) | 1990.2.16 민주자유당 입당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금산) | 11,748 (29.50%) | 낙선 (2위)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금산) | 20,630 (19.36%) | 낙선 (2위)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23번) | - | 낙선→당선 | 2002.11.26 승계[5] |
5. 둘러보기 [편집]
[1] 이경희가 충청도 출신이라서 지지선언을 해준 것으로 보인다.[2]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유현진이 아닌 류현진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류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이게 다 윗 동네 때문이다.[3] 대덕군(현 대덕구), 금산군, 연기군[4] 대덕군(현 대덕구), 금산군, 연기군[5] 이회창 제16대 대통령 선거 출마로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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