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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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유삼봉은 1904년 9월 13일 함경남도 원산부 명석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11월 원산에서 덕원청년동맹(德源靑年同盟)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고, 1929년 2월 원산청년동맹(元山靑年同盟) 간부로 원산쟁의비판연설회(元山爭議批判演說會)를 홍보하는 격문을 배포하다 체포되었다.
1930년 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여 원산만세학생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전조선 전투적 학생에게 격(檄)함'이라는 제목의 격문 약 2,000매를 인쇄해 배포하였다가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았다.
1932년 12월 10일 최동희(崔東熙)[1]의 권유로 적노웅기그룹(赤勞雄基그룹) 조직책임을 맡아 조직 확대에 힘을 쏟다가, 1933년 2월 항만적색노동조합(港灣赤色勞動組合) 활동으로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같은 해 5월 기소유예를 받았으나 1934년 1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유삼봉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30년 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여 원산만세학생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전조선 전투적 학생에게 격(檄)함'이라는 제목의 격문 약 2,000매를 인쇄해 배포하였다가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았다.
1932년 12월 10일 최동희(崔東熙)[1]의 권유로 적노웅기그룹(赤勞雄基그룹) 조직책임을 맡아 조직 확대에 힘을 쏟다가, 1933년 2월 항만적색노동조합(港灣赤色勞動組合) 활동으로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같은 해 5월 기소유예를 받았으나 1934년 1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유삼봉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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