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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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유병하는 1898년 1월 19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남면(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하여 동지 김시현, 김지섭, 권정필 등과 함께 일제 기관의 파괴 및 고관의 처단 등 대대적인 독립투쟁을 일의키기로 결의하였다.
1923년 김시현이 상해에서 의열단이 제조한 폭탄 30개를 톈진으로 운반하고 독립운동가를 조사·체포하기 위하여 톈진에 특파된 경기도경찰부의 한인(韓人)경부 황옥을 설득하여 동지적 결합을 맺고 폭탄과 전단 수천장을 국내에 반입하여 총독부를 비롯한 일제의 중요기관을 폭파하려고 하였다.
1923년 2월, 그는 김시현에게서 무기를 제공받아 동지 유시태(柳時泰) 등과 함께 서울의 부호인 이인희(李麟熙)의 집에서 독립운동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붙잡혀 동년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6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동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7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유병하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3년 김시현이 상해에서 의열단이 제조한 폭탄 30개를 톈진으로 운반하고 독립운동가를 조사·체포하기 위하여 톈진에 특파된 경기도경찰부의 한인(韓人)경부 황옥을 설득하여 동지적 결합을 맺고 폭탄과 전단 수천장을 국내에 반입하여 총독부를 비롯한 일제의 중요기관을 폭파하려고 하였다.
1923년 2월, 그는 김시현에게서 무기를 제공받아 동지 유시태(柳時泰) 등과 함께 서울의 부호인 이인희(李麟熙)의 집에서 독립운동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붙잡혀 동년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6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동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7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유병하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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