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백(전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젊어서 요절하여[1][2] 큰 기록은 남기지 못했지만 그의 가족들은 영 좋지않은(...) 의미에서 재밌는 기록을 남겼다.
유방이 젊을적 양아치 노릇을 할 때 사고를 치고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패거리를 유백의 집에 끌고 온 적이 있었다. 당연히 유백의 마누라는 이런 꼴을 좋아하지 않았고 국 한그릇 달라는 유방 무리한테 들으랍시고 솥바닥을 긁는 소리를 냈다. 유방 패거리는 화를 내면서 다 나가 버렸는데 유방이 나중에 보니 국이 있었던 것이다. 이 일로 유방은 큰 형수한테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3]
이 때의 일을 가슴에 계속 품은 유방은 유백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인 유신(劉信)에게는 작위를 주지 않았다.[4] 이에 유태공이 하도 부탁하니 작위를 주긴 했지만 작위의 이름은 갱힐후(羹頡侯). 국 빼앗는 제후(...)라는 뜻이니 어지간히 뒤끝이 오래 간듯.
다만 유백 본인은 한왕 5년(기원전 202년) 정월, 무애후(武哀侯)로 추봉됐고, 고후 8년(기원전 181년) 5월에 진평 등의 상소를 통해서 무애왕(武哀王)이라는 시호를 받았다.[5]
유방이 젊을적 양아치 노릇을 할 때 사고를 치고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패거리를 유백의 집에 끌고 온 적이 있었다. 당연히 유백의 마누라는 이런 꼴을 좋아하지 않았고 국 한그릇 달라는 유방 무리한테 들으랍시고 솥바닥을 긁는 소리를 냈다. 유방 패거리는 화를 내면서 다 나가 버렸는데 유방이 나중에 보니 국이 있었던 것이다. 이 일로 유방은 큰 형수한테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3]
이 때의 일을 가슴에 계속 품은 유방은 유백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인 유신(劉信)에게는 작위를 주지 않았다.[4] 이에 유태공이 하도 부탁하니 작위를 주긴 했지만 작위의 이름은 갱힐후(羹頡侯). 국 빼앗는 제후(...)라는 뜻이니 어지간히 뒤끝이 오래 간듯.
다만 유백 본인은 한왕 5년(기원전 202년) 정월, 무애후(武哀侯)로 추봉됐고, 고후 8년(기원전 181년) 5월에 진평 등의 상소를 통해서 무애왕(武哀王)이라는 시호를 받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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