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낙준(군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소속 정당 | |
복무 | |
1979년 ~ 2011년 | |
재임기간 | 제30대 해병대사령관 |
2010년 ~ 2011년 10월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2.1. 해병대사령관 [편집]
재직중 해병소장들한테 음해 투서를 당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해병소장 2명[2]이 제기한 투서의 내용은 유사령관이 여권 실세에게 수억원을 주겠다는 각서를 썼다는 것이었고 군검찰은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두 소장을 구속했다. 그러나 소장들 역시 2011년말에 증거 불충분으로 군사법원에서 무죄 방면되었다.
게다가 임기중 발생한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등으로 인해 유낙준 사령관은 사임했다. 사건 직후 열린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육군참모총장-국방부장관 출신의 김장수 의원이 유낙준 사령관에게 해병대가 타군에 비해 병영문화가 10년 이상 뒤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군 내부에서 있는데 그걸 사령관도 인정하느냐라고 질책하자 10년 이상 뒤떨어져 있음을 인정했다.[3]
파일:external/www.haebyeong.com/%EC%82%AC%EB%A0%B9%EA%B4%80.jpg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전사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유족들에게 인사하는 유낙준 사령관.
2.2. 전역후 [편집]
3. 여담 [편집]
유화적이면서도 결단 있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허례허식이나 불필요한 관료제를 기피하며, 실용적인 절차를 좋아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당시 방열 및 사격에 대해 사령부의 인가 조치 없이 곧바록 사격을 개시하도록 명령하여 북한군의 도발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게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초빙 교수가 되어서도 세미나를 할 때 학생들이 과제(레포트)에 불필요한 정보를 넣는 것을 정정시키고, 핵심만 골라서 집어넣게 한다.
수업 도중 본인이 S●기업, 현● 회장과 친분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허례허식이나 불필요한 관료제를 기피하며, 실용적인 절차를 좋아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당시 방열 및 사격에 대해 사령부의 인가 조치 없이 곧바록 사격을 개시하도록 명령하여 북한군의 도발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게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초빙 교수가 되어서도 세미나를 할 때 학생들이 과제(레포트)에 불필요한 정보를 넣는 것을 정정시키고, 핵심만 골라서 집어넣게 한다.
수업 도중 본인이 S●기업, 현● 회장과 친분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1] 동기로는 구옥회 제독과 윤공용 제독이 있다.[2] 해병대 제2사단장 박모 소장(해사 36기)과 부사령관 홍모 소장이었다. 당시 부사령관은 전역을 앞둔 소장으로 유낙준 사령관과 해사 동기(33기)였다. 해병대는 소장이 4명 밖에 안 된다. 1사단장, 2사단장, 부사령관,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 사족으로 당시 1사단장은 후에 32대 사령관이 되는 이영주 소장(해사 35기)이었고,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은 유낙준 사령관 후임 사령관인 이호연 소장(해사 34기)이었다.[3] 그러나 이 답변 내용에 대해서는 해병대 예비역들, 특히 사병 출신들이 상당히 분노했다. 정확히 어떤 근거로 10년 이상 뒤떨어져있다고 평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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