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홍(1881)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전라북도 전주군 소양면 해월리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유기홍은 1881년생이며 전라북도 전주군 소양면 해월리 출신이다. 그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20년 10월경 전주에 있는 김성도(金成道)의 자택에서 조기선(趙基善)ㆍ고판홍ㆍ김성도ㆍ김성수(金成洙) 등과 회합하여, 임실군 내 부호(富戶)들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모집된 자금 중 일부는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하여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할 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고판홍이 이선경(李善京)에게 의뢰하여 철관(鐵管)으로 총통(銃筒)을 제작하고 나무 조각을 이용하여 모의권총 두 자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성수가 금융조합의 출금전표(出金傳票)를 구해오는 등 구체적으로 활동을 준비하였다.

1920년 11월 30일 조기선ㆍ고판홍ㆍ김성도와 함께 임실군 청웅면 옥산리에 있는 오태섭(吳泰燮)의 주막에서 회합하였다. 이 자리에서 임실면 신안리)에 있는 한규석(韓奎錫)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그날 바로 조기선과 고판홍은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으며, 만일에 대비하여 유기홍과 김성도는 주막에서 대기하기로 하였다. 당일 오후 4시경 조기선과 고판홍이 한규석의 집으로 가서 "자신들은 가정부원(假政府員)으로 기부금을 모집하러 왔다"고 하며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이후에도 1920년 12월 1일 조기선과 함께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에 가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고, 다시 이틀 후인 12월 3일에는 조기선ㆍ고판홍과 함께 임실군 운암면 용운리에서 현금 20원 등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1921년 3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유기홍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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