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종관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위종관(魏鍾琯)
생몰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단산리[1]
사망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편집]

위종관은 1909년 8월 10일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단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3년 10월 장흥군 관산면 옥당리에서 유재성(劉載星)·정진수 등과 함께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농민조합을 조직하고 각 부락 농민조합내에 청년반·농민반을 두게 하여 노농운동(勞農運動)을 전개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무죄를 언도받았으나 검사의 불복으로 공소가 제기되어 1937년 7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장흥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91년 9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위종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장흥 위씨 집성촌이다. 위성곤 제20·21대 국회의원과 위승호국방대학교 총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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