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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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 3대 국왕 右渠王 | 우거왕 | ||
우거왕(右渠王) | ||
위(衛) | ||
우거(右渠) | ||
위만(조부), 2대 왕(부친), 위장항(왕자) | ||
생몰 | ? ~ 기원전 108년 | |
재위 | 최소 기원전 128년? ~ 기원전 108년 | |
출생지 | ?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2.1. 전한과의 마찰 [편집]
우거는 이때 즉위하여 중국에서 몰려오는 망명자를 받아들이고 남쪽의 진나라가 한나라와 직접 교역하는 것을 막고 교역할 때 반드시 고조선을 통해서 하게 하는 정책을 펼친다. 이에 한나라는 기원전 109년 사신 섭하(涉何)를 보내 달래려 했으나 우거왕을 달래지 못했다.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가게 된 섭하는 처벌이 두려워[1] 패수에서 배웅을 나온 위만 조선의 비왕(裨王)[2] 장(長)을 죽였다. 그러고는 돌아와서는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뻥을 쳤다.[3] 이에 분노한 우거왕은 군사를 보내 섭하를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무제는 기원전 109년 고조선 정벌을 명했다.
2.2. 왕검성 공방전 [편집]
무제는 우선 장군 양복과 순체 등에게 명하여 육군 5만과 수군 7천을 이끌고 수륙병진으로 고조선을 공격케 하였다. 이에 고조선군은 험난한 지형에 의지하여 대항했고 누선 장군 양복(楊僕)이 왕검성(王儉城)을 공격하자 이를 격파하고 좌장군 순체(荀彘)의 수군을 패수 서쪽에서 저지하였다. 고조선의 강력한 저항에 놀란 무제는 위산(衛山)을 보내 우거와 교섭하였고 우거가 태자를 한나라에 볼모로 보냄으로써 전쟁이 종결되나 싶었으나 위산과 순체가 태자가 거느린 호위대에게 무장 해제를 요구했고 이에 태자가 불응하여 되돌아 와서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4]
2.3. 비극적인 최후 [편집]
한나라군은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포위하였으나 왕검성의 수비는 튼튼했다. 이때 우거왕이 계략을 세워, 순체와는 싸움을 계속하고 양복에게는 몰래 사자를 보내 항복하겠다고 거짓 소식을 전달한 것이다. 계략이 적중하여 순체와 양복이 내분을 일으키는 바람에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를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순체가 양복을 잡아 가두고 군대를 통합하는데 성공하면서 왕검성 공격에 박차를 가하였고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임을 느낀 고조선의 대신들은 우거왕에게 항복할 것을 종용했으나 우거왕은 이를 거부했고 이에 일부 대신들은 한나라에 항복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기원전 108년 여름, 이계상(尼谿相) 삼(參)이 자객을 보내 우거왕은 그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자세한 내용은 왕검성 전투 항목 참조.
자세한 내용은 왕검성 전투 항목 참조.
2.4. 사후 [편집]
3. 가족 [편집]
4. 우거왕 대의 인물 [편집]
우거왕 본인과, 성기, 장을 제외한 대부분이 전한으로 항복한자들이다.
- 재상 노인
- 최 - 노인의 아들, 자신의 아버지인 노인보다 먼저 죽는다. 또한 노인보다 먼저 항복했다.
- 한음 - 기원전 108년 이후 전한 한 무제에게 적저후로 봉해졌다.
- 장항 - 우거왕의 아들이자 왕자. 노인, 최, 왕협, 한음과 함께 성기를 암살한다.
5. 관련서적 [편집]
6. 대중 매체 [편집]
7. 기타 [편집]
8. 둘러보기(계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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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무제는 신하들에게 무자비한 황제로 재위기간에 죽인 신하들이 많았다. 섭하 이전에 사신으로 간 위산도 성과없이 돌아오자 무제는 바로 그를 처형했다.[2] 고조선의 작호로 보임.[3] 이에 한무제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섭하에게 요동 동부 도위 작위를 맡겼다.[4] 고조선 태자가 무장 해제를 거부하고 도로 돌아가버리자 기껏 마무리되어 가던 동방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였고, 이에 분노한 한 무제는 뒷목을 잡고 위산을 참수해 버렸다. 엄청난 전비와 인력을 들여 원정을 했고 접전 끝에 숙이고 들어오겠다던 고조선이 다시금 반목하는 상황이 된 것. 무제가 분노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5] 또는 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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