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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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療養 [편집]
2. 중국 랴오닝 성의 도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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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후진의 추존 황제 (姚襄) [편집]
요진 추존 군주 魏武王 | 위무왕 | |
없음 | |
위무왕(魏武王) | |
요(姚) | |
양(襄) | |
경국(景國) | |
생몰 기간 | 331년 ~ 357년 |
재위 기간 | 352년 ~ 357년 |
부친 | 요익중(姚弋仲) |
5호 16국 시대 관중 지방에 세워진 나라인 후진의 건국 군주인 요장의 형. 아버지 요익중(姚弋仲)은 강족(羌族)의 족장이었는데, 후조가 염민(冉閔)에게 멸망하자 하북에서 거병하였고 후조의 후계자인 석지 (石祗) 휘하에 가담, 염위에 맞섰다. 요익중은 석지에게 친조왕(親趙王)으로 봉해졌고 요양 역시 신창공(新昌公)으로 봉해져 예주 자사가 되었다. 하지만 351년에 요익장은 염위에 패하였고 그와중에 석지가 살해되었다.
이후 요익장과 요양은 동진에 투항하여 각각 고릉군공(高陵郡公)과 평향현공(平鄉縣公)이 되었다. 요익장은 352년에 사망하여 요양이 강족의 수장이 되었는데, 전진과 맞섰으나 패하여 다시 동진에 의탁하였다. 하지만 동진의 장군 은호(殷浩)는 요양을 경계하였고 결국 353년에 회수를 건너 강족을 공격하였는데, 요양은 그를 격파하고 오히려 회남(淮南)을 점령하였다.
요양은 354년에 형식상으로 동진의 신하가 되었으나 사실상 독립적으로 움직였고, 355년에 허창을 점령하고 356년에 낙양을 공격하기도 했다. 날로 강성해지는 요양을 경계한 동진은 환온(桓溫)을 보내었고, 요양은 그가 이끄는 북벌군에 패하여 평양(平陽, 린펀)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요양과 강족은 화북 대신 관중(關中)을 목표로 하여 여러 성을 공격하였다. 이는 전진의 2대 군주 부생(苻生)의 어그로를 끌었고, 셴양 인근에서 맞붙었다. (357년)
요양은 부생의 매복에 빠져 삼원(三原)에서 전사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동생 요장(姚萇)은 강족을 이끌고 전진에 투항하며 강족의 1차 국가 건설 노력은 살패로 귀결되었다. 부생은 요장에게 요양의 제사를 후히 치르도록 하였으며, 훗날 요장이 후진을 건국하자 요양은 위무왕(魏武王)으로 추존되었다.
3.1. 둘러보기(계보) [편집]
시조 경원제 요익중 | ← | 위무왕 요양 | → | 1대 태조 무소제 요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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