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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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장온이 실각하고 이에 연루되어 장온의 동생인 장백도 폐출되면서 230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했으며, 장백의 아내인 육울생이 절개를 지키자 육울생의 절개를 표창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궁의 변 때는 태자인 손화와 가까이 지내 태자파였으며, 육손이 손화를 확실하게 태자로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손권이 요신, 고담, 고승 등 육손의 인척이 태자에 붙어있다는 것을 빌미로 쫓아내 분사하게 했으며, 요신은 고담, 고승과 함께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와서 태상이 되었고 267년 12월에는 맹종과 함께 손호의 명에 따라 관료와 중군의 보병, 기병 2천 명을 준비해 임금의 시신을 태우는 수레로 동쪽 명릉을 가서 손화의 신주를 맞이했다.
269년에 육개가 죽기 직전에 올린 상소에서는 누현, 하소, 장제, 곽탁, 설영, 등수, 육희, 육항 등과 함께 사직의 근간이자 국가의 훌륭한 보좌가 되는 인재로 언급되었다.
저서로는 사위, 요씨신서, 혼천론, 역경의 주석 등이 있다. 후대 수당시대의 역사가인 요찰과 요찰의 아들인 요사렴은 요신의 후손이 된다.
이궁의 변 때는 태자인 손화와 가까이 지내 태자파였으며, 육손이 손화를 확실하게 태자로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손권이 요신, 고담, 고승 등 육손의 인척이 태자에 붙어있다는 것을 빌미로 쫓아내 분사하게 했으며, 요신은 고담, 고승과 함께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와서 태상이 되었고 267년 12월에는 맹종과 함께 손호의 명에 따라 관료와 중군의 보병, 기병 2천 명을 준비해 임금의 시신을 태우는 수레로 동쪽 명릉을 가서 손화의 신주를 맞이했다.
269년에 육개가 죽기 직전에 올린 상소에서는 누현, 하소, 장제, 곽탁, 설영, 등수, 육희, 육항 등과 함께 사직의 근간이자 국가의 훌륭한 보좌가 되는 인재로 언급되었다.
저서로는 사위, 요씨신서, 혼천론, 역경의 주석 등이 있다. 후대 수당시대의 역사가인 요찰과 요찰의 아들인 요사렴은 요신의 후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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