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모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일반적인 의미 [편집]
- 王母, 할머니 또는 임금의 어머니.
2. 삼국시대의 촉한의 인물 [편집]
王謀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촉한의 관료. 자는 원태(元泰).
익주 한가군 사람으로 그의 용모는 단정하고 행동거지는 법도에 맞고 아담했으며, 유장 밑에서 파군태수를 지내다가 귀환해서 주의 치중종사가 되었다. 유비가 익주목이 될 때 별가로 임명되었다가 219년에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뇌공을 태상, 황주를 광록훈으로 삼으면서 왕모는 소부[1]가 되었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221년에는 왕모를 포함해 허정, 제갈량, 미축, 뇌공, 황주 등과 함께 유비가 즉위하도록 간청하는 상주문을 올렸으며, 여러 신하들 중 전후로 글을 올린 이가 8백여 명으로 상서로운 징조를 상주했다고 한다. 223년에 관내후에 봉해지면서 뇌공 대신에 태상이 되었다.
뇌공, 황주와 함께 그 사적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전을 만들지 못했다고 하며, 훗날 장완이 장휴에게 질문할 때 같은 군의 선배로 한가군에 왕모라는 자가 있어 그를 계승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장휴는 왕모에 이르러서는 주 안에 이을 만한 자가 없다고 하면서 하물며 우리 군에서야라고 대답해 그가 중요시된 것은 이와 같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평가로는 몸을 닦아 신중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의 황제 즉위 때 이름이 등장할 뿐이다.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촉한의 관료. 자는 원태(元泰).
익주 한가군 사람으로 그의 용모는 단정하고 행동거지는 법도에 맞고 아담했으며, 유장 밑에서 파군태수를 지내다가 귀환해서 주의 치중종사가 되었다. 유비가 익주목이 될 때 별가로 임명되었다가 219년에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뇌공을 태상, 황주를 광록훈으로 삼으면서 왕모는 소부[1]가 되었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221년에는 왕모를 포함해 허정, 제갈량, 미축, 뇌공, 황주 등과 함께 유비가 즉위하도록 간청하는 상주문을 올렸으며, 여러 신하들 중 전후로 글을 올린 이가 8백여 명으로 상서로운 징조를 상주했다고 한다. 223년에 관내후에 봉해지면서 뇌공 대신에 태상이 되었다.
뇌공, 황주와 함께 그 사적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전을 만들지 못했다고 하며, 훗날 장완이 장휴에게 질문할 때 같은 군의 선배로 한가군에 왕모라는 자가 있어 그를 계승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장휴는 왕모에 이르러서는 주 안에 이을 만한 자가 없다고 하면서 하물며 우리 군에서야라고 대답해 그가 중요시된 것은 이와 같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평가로는 몸을 닦아 신중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의 황제 즉위 때 이름이 등장할 뿐이다.
2.1. 창작물에서 [편집]
[1] 少傅, 구경(九卿)의 하나로 천자의 어의, 어물, 경비, 식사 따위를 맡아보는 관직.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