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왕기서는 1899년 7월 7일 평안남도 평양부 시족면 남경동(현 평양직할시 삼석구역 호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7월 중국 유하현 고산자에서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여 독립군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하순 교관 지청천으로부터 군자금과 독립군 모집 지시를 받고 중국 안동현에 도착했다. 그 후 안동현에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엄우룡·김봉원(金鳳源)·윤세주 등과 함께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 방법 등을 협의하였다.
1920년 상하이에 본부를 둔 의용단(義勇團)에 김순록(金淳祿)·김봉섭(金鳳燮)·정석흥(丁錫興) 등과 함께 가입했으며, 같은 해 11월부터 평남 대동군 시족면, 12월 강동군 원타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1921년 강동군 고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9월 16일 평남경찰부, 평양경찰서의 연합경관대와 교전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 후 1921년 11월 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8년 3월 31일 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왕기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0년 상하이에 본부를 둔 의용단(義勇團)에 김순록(金淳祿)·김봉섭(金鳳燮)·정석흥(丁錫興) 등과 함께 가입했으며, 같은 해 11월부터 평남 대동군 시족면, 12월 강동군 원타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1921년 강동군 고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9월 16일 평남경찰부, 평양경찰서의 연합경관대와 교전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 후 1921년 11월 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8년 3월 31일 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왕기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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