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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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의 13대손 | 도정궁 12대 사손 완창군 完昌君 | ||
완창군(完昌君)[1] | ||
전주(全州) | ||
시인(時仁) | ||
덕일(德一) | ||
양부 | ||
양모 | 임천군부인 임천 조씨(林川 趙氏) | |
생부 | 이옥[2] | |
생모 | 경주 김씨(慶州 金氏) | |
부인 | 경주군부인 경주 김씨(慶州 金氏) | |
자녀 | 2남 | |
생몰 기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805년(순조 5년)[5] 5월 2일 한성부에서 덕흥대원군의 9대 사손 판돈녕부사 이풍(李灃)[6]의 차남이자 달선군 이영의 양자인 이민식의 둘째 아들 이옥과 경주 김씨 부인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1830년(순조 30년) 6월에 생가 큰아버지이자 족보 상으로 7촌 숙부가 되는 완성군 이희의 양자가 되었다.
양자가 된 그 해에 목릉(穆陵)[7] 참봉을 역임하는 것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년 뒤에는 산 부지 문제로 다툼이 있어 친형 이시학과 함께 의금부에 잡히기도 했다.(...) 1837년(헌종 3년)에는 대왕대비 순원왕후에 의해 도정궁 사손 자격으로 세습되는 군 작위를 받아 완창군(完昌君)에 봉작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사옹원 제조에 임명되었다. 왕실 족보인 선원보략(璿源譜略) 편찬 때 감독을 맡기도 했고 순조의 딸 덕온공주의 혼례 때 가례청의 책임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문안 재신(問安宰臣)이라 하여 청나라에서 온 사신의 숙소에 찾아가 문안하는 일도 맡았다. 이후에도 오위도총부 도총관, 큰 제사 때마다 헌관을 맡았고 1840년(헌종 6년)에는 진위(陳慰) 겸 진향사(進香使)로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크고 작은 국가적 일들을 많이 맡았다.
1843년(헌종 9년) 3월 11일에 별세하였다. 향년 39세. 묘는 수락산 끝자락,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다.
양자가 된 그 해에 목릉(穆陵)[7] 참봉을 역임하는 것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년 뒤에는 산 부지 문제로 다툼이 있어 친형 이시학과 함께 의금부에 잡히기도 했다.(...) 1837년(헌종 3년)에는 대왕대비 순원왕후에 의해 도정궁 사손 자격으로 세습되는 군 작위를 받아 완창군(完昌君)에 봉작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사옹원 제조에 임명되었다. 왕실 족보인 선원보략(璿源譜略) 편찬 때 감독을 맡기도 했고 순조의 딸 덕온공주의 혼례 때 가례청의 책임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문안 재신(問安宰臣)이라 하여 청나라에서 온 사신의 숙소에 찾아가 문안하는 일도 맡았다. 이후에도 오위도총부 도총관, 큰 제사 때마다 헌관을 맡았고 1840년(헌종 6년)에는 진위(陳慰) 겸 진향사(進香使)로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크고 작은 국가적 일들을 많이 맡았다.
1843년(헌종 9년) 3월 11일에 별세하였다. 향년 39세. 묘는 수락산 끝자락,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다.
3. 가족과 자손 [편집]
정실부인으로 남원군부인 윤씨와 경주군부인 김씨가 있다. 그리고 소실이 하나 있었다. 남원군부인 윤씨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고 경주군부인 김씨 사이에서 아들 경원군 이하전을 두었다. 이하전은 철종 시기 역모로 몰려 사형당했다. 이 때문에 이미 죽은 완창군도 파양당했고 사판이 훼철되는 등 수난을 겪다가 고종 대에 복권되었다. 자세한 것은 경원군(1842) 항목 참조. 첩 한 명에게서는 서장남 이우용(李禹鎔)[8]을 두었다.
참고로 생가 누이 이씨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5대손 민치구와 혼인했는데 그 사이에서 난 딸이 여흥부대부인 민씨, 즉 흥선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의 생모다. 그래서 고종은 그의 외외종손 겸 동생 뻘이 된다.[9]
참고로 생가 누이 이씨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5대손 민치구와 혼인했는데 그 사이에서 난 딸이 여흥부대부인 민씨, 즉 흥선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의 생모다. 그래서 고종은 그의 외외종손 겸 동생 뻘이 된다.[9]
[1] 작위는 왕실의 본관인 완산에서 유래했다. 양아버지 완성군의 경우도 마찬가지.[2] 덕흥대원군의 9대 사손 판돈녕부사 이풍(李灃)[10]의 차남이자 달선군 이영의 양자가 된 이민식의 둘째 아들.[3] 풍과 례 두 가지 음이 있어 이례로도 읽는다.[4] 제사를 받드는 후손이란 뜻이다.[5] 순조는 완창군의 할아버지 뻘이나 나이는 15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즉, 완창군은 고종과 같은 항렬이다.[6] 풍과 례 두 가지 음이 있어 이례로도 읽는다.[7] 선조의 능.[8] 초명은 이우전(李禹銓). 1868년에 이우용으로 개명.[9] 둘 다 덕흥대원군의 12대손이다. 부계 기준 촌수로는 무려 24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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