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씨)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옥씨에서 넘어옴
분류
1. 개요 [편집]
옥(玉)씨는 한국의 성씨로, 한국 성씨 순위 88위 22,964명이다. 한자가 왕씨와 비슷하다. 연원은 당나라 때 고구려, 신라를 거쳐 경남 의령에 정착한 옥진서에 연원을 두고 있다.
2. 연원 [편집]
의령 옥씨의 시조 옥진서(玉眞瑞)[1]는 당나라에서 고구려로 파견된 8재사(八才士)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 멸망 후 신라로 들어가 국학교수(國學敎授)를 역임하였는데 그 공으로 의춘군(宜春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를 고증할 수 없어 고려 때 창정(倉正)을 지낸 옥은종(玉恩宗)을 1세조로 한다.
본관은 문헌에 17본이 전하나 현재는 의령 옥씨 단본으로 통합되었다.
한편 옥씨에 대해서는 고려왕족의 후예 왕(王)씨가 이성계일가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왕씨 성과 비슷한 문자형태를 가진 옥씨 성으로 환성했다는 설이 있으며 의령 옥씨 집성촌 중 하나가 조선왕조가 왕씨를 유배시켰던 거제도 인것을 보면 역성왕조의 박해를 피해 정착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2] 한편 여말선초의 왕사온(王斯溫)이란 사람이 다른 기록에서는 옥사온(玉斯溫)이라고 기록된 것처럼 역사기록에서 고려말에 왕씨였던 사람이 이름은 그대로에 성만 옥씨로 바꾼 기록도 몇몇 발견되어서 이런 의혹은 상당히 알려져있다. 그러나 대대로 옥씨를 써온 사람들 입장에선 확실하지 않은 추측으로 갑자기 성을 바꾸는 셈이 돼 버리니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3]
본관은 문헌에 17본이 전하나 현재는 의령 옥씨 단본으로 통합되었다.
한편 옥씨에 대해서는 고려왕족의 후예 왕(王)씨가 이성계일가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왕씨 성과 비슷한 문자형태를 가진 옥씨 성으로 환성했다는 설이 있으며 의령 옥씨 집성촌 중 하나가 조선왕조가 왕씨를 유배시켰던 거제도 인것을 보면 역성왕조의 박해를 피해 정착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2] 한편 여말선초의 왕사온(王斯溫)이란 사람이 다른 기록에서는 옥사온(玉斯溫)이라고 기록된 것처럼 역사기록에서 고려말에 왕씨였던 사람이 이름은 그대로에 성만 옥씨로 바꾼 기록도 몇몇 발견되어서 이런 의혹은 상당히 알려져있다. 그러나 대대로 옥씨를 써온 사람들 입장에선 확실하지 않은 추측으로 갑자기 성을 바꾸는 셈이 돼 버리니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3]
3. 풀리지 않은 숙제. 왕사온과 옥사온, 왕산악과 옥보고 [편집]
의령 옥씨는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개성왕씨 집안과 함께 늘 끊이지 않게 등장하는 집안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금 더 명확하게 구분짓고 싶지만, 풀리지 않은 숙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옥사온(玉斯溫)은 고려시대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과 고려문과방목(高麗文科榜目)에서 왕사온(王斯溫)과 옥사온(玉斯溫)은 동일한 번호에 등재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신라 시대에 존재했던 거문고의 대가 옥보고(玉寶高)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어 집안의 존립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거문고의 대가에서도 왕산악(王山岳)과 옥보고(玉寶高)는 동일하게 출생 미상과 사망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 왕산악(王山岳)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신라고기(新羅古記)에 기록되어 있는 고구려 시대 거문고의 제작자이자 거문고 연주의 대가
- 옥보고(玉寶高)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는 통일신라 시대 거문고의 대가
김부식(金富軾)(출생 1075년 ~ 사망 1151년)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의 제24대 양원왕(재위 545~559)때 왕산악(王山岳)은 진(晉)나라에서 보낸 칠현금(七絃琴)을 완전히 뜯어 고쳐 6개의 줄로 된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으며, 옥보고(玉寶高)는 신라 35대 경덕왕(재위 742~765)때 지리산 운상원(雲上院)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주하며 새로운 곡조 30곡을 만들어 연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옥사온(玉斯溫)은 고려시대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과 고려문과방목(高麗文科榜目)에서 왕사온(王斯溫)과 옥사온(玉斯溫)은 동일한 번호에 등재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신라 시대에 존재했던 거문고의 대가 옥보고(玉寶高)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어 집안의 존립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거문고의 대가에서도 왕산악(王山岳)과 옥보고(玉寶高)는 동일하게 출생 미상과 사망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 왕산악(王山岳)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신라고기(新羅古記)에 기록되어 있는 고구려 시대 거문고의 제작자이자 거문고 연주의 대가
- 옥보고(玉寶高)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는 통일신라 시대 거문고의 대가
김부식(金富軾)(출생 1075년 ~ 사망 1151년)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의 제24대 양원왕(재위 545~559)때 왕산악(王山岳)은 진(晉)나라에서 보낸 칠현금(七絃琴)을 완전히 뜯어 고쳐 6개의 줄로 된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으며, 옥보고(玉寶高)는 신라 35대 경덕왕(재위 742~765)때 지리산 운상원(雲上院)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주하며 새로운 곡조 30곡을 만들어 연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4. 옥포해전과 의령 옥씨 [편집]
5. 옥씨 성을 가진 유명인 [편집]
6. 옥씨 성을 가진 가상 인물 [편집]
- 도교의 신 - 옥황상제
- 상상의 동물, 신화 - 옥토끼
- 한국 만화 신 구미호 - 옥매향(신 구미호)
- 한국 영화 옥자(영화) - 옥자
[1] 정작 바이두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걸로 보아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덧붙여서 중국의 옥씨의 연원을 살펴보면 한족보다 소수민족(주로 만주족, 몽골족, 좡족)에서 주로 나오는 성씨이다.[2] 왕씨에서 옥씨로 바꾼 사실이 맞다면, 의령 옥씨의 시조는 가공인물일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에서 옥이라는 성씨가 극히 드물다는 점과 함께 보면 마냥 틀린 말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3] 반면 옥씨들 중에서도 이걸 사실로 믿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옥주현이 아는 형님에 나왔을 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같이 나온 윤종신이 자기 할머니도 옥씨였는데 비슷한 얘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4] 특히 이분의 별명은 전부다 옥으로 시작할 정도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