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준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오창준(吳昌俊)
생몰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오창준은 1890년 1월 29일 함경남도 덕원(원산) 상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9월 23일 원산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1920년 8월 미국 국회의원단의 방문을 기회로, 원산의 김장석(金章錫)ㆍ김상익(金相翊) 등이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추진한 것이었다. 그는 김장석ㆍ조병철(趙秉喆)ㆍ이용구ㆍ이용훤(李容暄) 등과 향후 계획을 협의한 후 역할 분담을 하였다.

1920년 9월 23일, 오창준은 북촌동 경찰관파출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용구 등이 경찰관파출소와 일본인 상점을 파괴하라고 외치자, 군중을 이끌고 경찰관파출소와 일본인 상점에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투쟁하였다. 이어서 시위 군중을 이끌고 원산 시내를 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경찰은 총칼로 탄압하여 현장에서 2명이 순국하고 주동자 약 50명이 붙잡혔다. 오창준도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0년 12월 2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 제령 제7호 위반, 소요, 건조물손괴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921년 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2년 5월 11일 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오창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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