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오용간(吳用干)
생몰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 덕성리
사망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오용간은 1869년 8월 28일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 덕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신교 신자로, 1919년 3월 18일 자신의 집과 교회에서 윤영복(尹永福), 윤영만(尹永滿) 등과 협의하여 3월 22일 장날을 독립만세 시위날짜로 정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교인들을 중심으로 동지들을 규합했다. 이윽고 3월 22일 오후 1시경 많은 사람들이 장터로 모여들자, 오용간을 비롯한 주도자들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시위군중들에게 나눠주었고, 오용간과 윤영복 등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위군중은 이에 호응하여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덕성리 일대를 돌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영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1년 2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오용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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