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오봉희(吳鳳熙)
이명
오봉희(吳鳳凞)
본관
생몰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면 남신동[1]
사망지
미상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오봉희는 1882년생이며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면 남신동 출신이다. 그는 1920년 음력 7월 상순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면에서 대한독립단에서 파견한 대원 박승연(朴勝衍)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 가산지단을 조직하고 지단장으로 임명되어 독립운동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단원을 모집하고 무기를 은닉하며 독립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가산지단 단원들은 대한독립단 내지분치기관임시통칙(內地分置機關臨時通則)이라는 책 10권과 경고문 30장 등을 태천군(泰川郡) 백운섭(白雲燮) 등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광한단 대원들과 연락하며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다 체포된 그는 1921년 4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받고 상고했지만, 1921년 6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오봉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해주 오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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