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간수교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청계천의 교량 | ||||
상류 방면 | ← | 이름 | → | 하류 방면 |
전태일다리 (버들다리) | 오간수교 | |||
460호 | ← | 461호 | → | 462호 |
공주 수촌리 고분군 |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 |||
오간수교# |
1. 개요 [편집]
2. 위치 [편집]
3. 역사 [편집]
오간수문 옛 모습 |
원래는 한양도성 성곽의 일부로, 청계천이 도성을 빠져나가게 만든 수문(水門)이었다. 5개의 무지개 모양으로 된 홍예문이었으며 이름도 본래는 ‘오간수문(五間水門)’이었다. 사대문안의 모든[1] 물줄기는 청계천을 통해 이 문으로 빠져나갔다.
1396년(태조 5년)에 한양도성을 지을 때 창건한 듯 하나 정확한 건 모른다. 처음에는 수문이 3개였으나 1421년(세종 3년)에 장마로 개천이 범람하자 1년 뒤에 추가로 2개를 더 만들어 5개가 되었다.
1612년(광해군 4년)에 수리했다.#[2] 1760년(영조 36년)에 청계천을 준설하면서 다시 보수했다.
1907년(융희 원년) 일제가 청계천 물줄기가 원활하게 흘러간다는 명분 하에 오간수문을 헐었고 1년 뒤에는 근처의 성벽마저 철거했다. 이후 그 자리에 콘크리트로 새 다리를 짓고 이름을 ‘오간수교(五間水橋)’라 했다.
1396년(태조 5년)에 한양도성을 지을 때 창건한 듯 하나 정확한 건 모른다. 처음에는 수문이 3개였으나 1421년(세종 3년)에 장마로 개천이 범람하자 1년 뒤에 추가로 2개를 더 만들어 5개가 되었다.
1612년(광해군 4년)에 수리했다.#[2] 1760년(영조 36년)에 청계천을 준설하면서 다시 보수했다.
1907년(융희 원년) 일제가 청계천 물줄기가 원활하게 흘러간다는 명분 하에 오간수문을 헐었고 1년 뒤에는 근처의 성벽마저 철거했다. 이후 그 자리에 콘크리트로 새 다리를 짓고 이름을 ‘오간수교(五間水橋)’라 했다.
오간수교를 지나는 전차 |
1921년 6월에 흥인지문(동대문)에서 광희문간 전차 노선이 새로 생기면서 오간수교 위에 전차 선로가 놓였다. 1926년 6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 행렬이 오간수교를 지나면서 약 4.5m던 다리의 폭을 약 8.2m로 확장했다. 그러나 그 다리마저도 1961년 12월에 청계천 복개공사로 사라졌다.
오간수문을 재현한 구조물 |
4. 특징 [편집]
4.1. 오간수문 [편집]
4.2. 오간수교 [편집]
5. 교통 [편집]
- 지하철: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이 제일 가깝다. 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역은 서울 지하철 2 ·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다. 14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하면 나온다. 대략 8분 정도 걸린다.
6. 여담 [편집]
오간수교 무대에서 주니엘이 부른 <연애하나 봐> |
- 2014년 9월 28일, 가수 주니엘이 오간수교의 천변무대에서 피크닉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이 때 <연애하나 봐>를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으며, 달, 벚꽃 등 일본 자작곡도 두 곡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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