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페이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역대 해군사령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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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 葉飛(섭비)[1]
- 간체: 叶飞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14년 5월 7일에 미국령 필리핀에서 화교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때 이름은 식스토 메르카도 티옹코(Sixto Mercado Tiongco)이었다. 아버지 얍순위(葉蓀衛, Yap Sun Uy)[2]는 복건성 출신의 상인이었고 1900년에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필리핀식 이름은 티옹코를 사용하였다. 어머니 프란시스카 메르카도(Francisca Mercado)는 필리핀인이었고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어릴 적에 지은 중국식 이름은 예치헝(葉啟亨)이었다. 1919년에 아버지가 그와 형을 중국 복건성으로 데려가 학교에 보냈다. 1928년에 지하조직이었던 중국 공산주의청년단[3]에 가입했다. 1932년 중국 공산당에 참여했고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에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국적이 필리핀이어서 곧 추방조치되었다. 어머니 프란시스카가 인수하러 홍콩에 왔을 때 석방되었는데 이때 겨우 18세였다. 어머니한테 일본가서 공부한다고 하고는 게릴라에 참여했다.
1934년에는 대장정에 참여했고 중일전쟁에도 참전했다. 소속은 신4군(新四軍)이었고 당시 중국군의 상황이 그랬지만 당연히 육군이었다. 국공내전 당시에는 맹량고(孟良崮) 전투 때 인민해방군 10집단군 사령관을 지냈다. 국공내전 중 금문도 공략을 시도했으나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무리하다가 수만명을 잃는 대참패를 겪는다.
1934년에는 대장정에 참여했고 중일전쟁에도 참전했다. 소속은 신4군(新四軍)이었고 당시 중국군의 상황이 그랬지만 당연히 육군이었다. 국공내전 당시에는 맹량고(孟良崮) 전투 때 인민해방군 10집단군 사령관을 지냈다. 국공내전 중 금문도 공략을 시도했으나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무리하다가 수만명을 잃는 대참패를 겪는다.
1940년의 예페이(왼쪽 인물), 가운데는 3대 외교부장을 지내는 지펑페이. |
국공내전이 끝난 뒤에는 복건성의 성장을 지냈고 남경군구 부사령관도 지냈다. 1955년엔 불과 41세 나이로 중국 육군대장에 오른다. 중국은 10명의 대장을 이때 임명하고 그 후에는 상장을 제복군인의 최고계급으로 정해버렸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해외 출신이란 이유로 박해를 당했다가 덩샤오핑에 의해 재등용되었다. 1979년에는 해군 경력이 없었음에도 덩샤오핑이 총참모장을 하던 시절에 해군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그 덕분에 1980년에 샤오징광에 이어 3대 해군사령원에 올랐다. 후임자는 류화칭이었다. 1982년에 전역했다. 1989년에는 고향인 필리핀을 70년만에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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