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군(1435)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조선 세종의 왕자
영해군
寧海君
영해군(寧海君)[1]
안도(安悼)
소덕대부(昭德大夫)
전주(全州)
장(璋)[2][3][4]
제지(題之)
부왕
생모
신빈 김씨(愼嬪 金氏)
부인
임천군부인 평산 신씨(平山 申氏)
자녀
2남 1녀
묘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생몰
기간
목차
1. 개요2. 생애3. 사후4. 가족과 후손

1. 개요 [편집]

조선 전기의 왕족. 세종의 17남이자 서9남이다. 어머니 신빈 김씨에게는 5남이다.

2. 생애 [편집]

1442년(세종 24년)에 영해군으로 책봉되었다.#

성품은 부드러웠으며 화목한 것을 좋아하여 남들과 다투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자라면서는 덕의와 절의가 있어 스승과 공부할 때는 화려함을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3. 사후 [편집]

1477년(성종 8년) 6월 15일에[5] 졸했다. 향년 42세.[6]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다. 영해군 묘 주변에는 다른 가족들의 묘도 자리하여 하나의 묘역을 이루고 있다. 영해군 가족 묘역은 1997년 12월 31일에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에 그의 위패를 모신 소덕사가 있다. 지금도 매년 영해군의 기일마다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4. 가족과 후손 [편집]

임천군부인 평산 신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큰딸은 밀양 박씨 박승약과 혼인했다.

아들은 영춘군 이인(永春君 李仁)과 길안도정 이의(吉安都正 李義)이다. 영춘군은 4남 2녀를 두었고 길안도정은 6남을 두었다.#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영해군파를 형성하고 있다.
[1] 군호는 경상도 영해군(寧海郡)에서 유래했다.[2] 선원록에 따르면 은언군의 아들 풍계군과 같은 이름으로 고쳤다지만 「조선시대 태실의 역사고고학적 연구」(홍성익,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5, pp.13)에 따르면 장(璋)과 당(瑭)의 태실이 따로 있으며 당(瑭)의 태지석에 황명(皇明) 정통 7년 임술 7월 24일 인시 생(生)으로 나와서 1435년 생인 영해군과 다른 왕자일 수 밖에 없다. 애당초 선원록은 임진왜란으로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완전히 불에 타서 없어졌고 숙종의 치세에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 만든 것인지라 임진왜란 앞의 계보는 부정확할 수 밖에 없다. 덧붙여 당(瑭)이 왕자의 이름으로 쓰였음을 인지할 수 밖에 없음에도 왜 영조풍계군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도 알 수 없다.[3] 더군다나 명태조와 이름이 겹친다. 명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인정하고 조공을 바치면서 왜 창업천자의 휘를 왕자의 이름으로 썼는지 알 수 없다.[4] 충선왕과 이름이 같다.[5] 음력 5월 5일.[6] 세는나이 4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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