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용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潁容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자엄(子嚴).
진국 장평현 사람으로 박사로써 여러 학문에 통달해 춘추좌씨전에 밝았으며, 태위 양사를 가르쳤다. 군 태수가 그를 효렴에 천거하거나 주에서 그를 초빙하면서 공거를 보냈지만 모두 응하지 않았다고 하며, 초평 연간[1]에 이각과 곽사의 싸움으로 벌어진 삼보의 난으로 경조윤, 우부풍, 좌풍익 일대가 초토화되어 30만 가구에 이르는 인구가 단 2년 사이에 전멸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전란을 피해 형주로 떠나면서 천여 명의 제자를 모아 가르쳤다.
유표가 무릉태수에 임명하려고 했지만 관직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으며, 춘추좌씨조례 5만자를 저술했다고 한다. 건안 연간[2]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삼국지집해에서 당양의 장판파에서 싸움이 일어난 것을 얘기할 때 호삼성이 춘추전에 이르길 초나라가 미 지역을 정벌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여기서 영용이 해석한 예로 미는 당양이라고 짧게 언급되었다.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자엄(子嚴).
진국 장평현 사람으로 박사로써 여러 학문에 통달해 춘추좌씨전에 밝았으며, 태위 양사를 가르쳤다. 군 태수가 그를 효렴에 천거하거나 주에서 그를 초빙하면서 공거를 보냈지만 모두 응하지 않았다고 하며, 초평 연간[1]에 이각과 곽사의 싸움으로 벌어진 삼보의 난으로 경조윤, 우부풍, 좌풍익 일대가 초토화되어 30만 가구에 이르는 인구가 단 2년 사이에 전멸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전란을 피해 형주로 떠나면서 천여 명의 제자를 모아 가르쳤다.
유표가 무릉태수에 임명하려고 했지만 관직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으며, 춘추좌씨조례 5만자를 저술했다고 한다. 건안 연간[2]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삼국지집해에서 당양의 장판파에서 싸움이 일어난 것을 얘기할 때 호삼성이 춘추전에 이르길 초나라가 미 지역을 정벌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여기서 영용이 해석한 예로 미는 당양이라고 짧게 언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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