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러협상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의의 [편집]
3. 과정 [편집]
3.1. 그레이트 게임 [편집]
3.2. 독일 제국의 등장 [편집]
이렇게 영국과 러시아가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에서, 오랫동안 힘의 공백지였던 중부 유럽에서 1871년 프로이센 왕국이 주도하는 독일 제국이 등장한다. 독일 제국 창설의 1등 공신 비스마르크가 권력을 쥐고 있을 당시에는, 기존의 열강을 자극하는 것이 독일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3]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은 식민지 개척과 군비 확장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 '유럽 내 세력 균형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했다.[4]
하지만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킨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우선 빌헬름 2세는 러시아와의 재보장 조약[5]의 갱신을 거부하면서 러시아 지도층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한다. 이어 세계 정책(Welt Politik)을 내세우면서 독일 제국 해군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한편, 오스만 제국과 협력 하에 이미 영국의 세력권이었던 중동 지역을 호시탐탐 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경제적으로 독일에게 추월당하고 있다는 우려에 휩싸여있던 영국 내부에서 이런 독일의 호전적인 외교 정책은 상당히 커다란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킨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우선 빌헬름 2세는 러시아와의 재보장 조약[5]의 갱신을 거부하면서 러시아 지도층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한다. 이어 세계 정책(Welt Politik)을 내세우면서 독일 제국 해군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한편, 오스만 제국과 협력 하에 이미 영국의 세력권이었던 중동 지역을 호시탐탐 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경제적으로 독일에게 추월당하고 있다는 우려에 휩싸여있던 영국 내부에서 이런 독일의 호전적인 외교 정책은 상당히 커다란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3.3. 체결 [편집]
4. 결과 [편집]
[1] 크림전쟁을 제외하면 양국간의 전면전이 발발한 적은 없었다.[2] 여담으로 이 그레이트 게임은 거문도 사건을 비롯해 러일전쟁과 영일동맹에 이르기까지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조선 ~ 대한제국의 운명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다.[3] 그리고 그 판단은 실로 정확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4]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발칸 반도를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 사이의 다툼을 조정해준 베를린 회의이다.[5] 독일 / 러시아 양국 중 하나가 제3국 이라쓰고 프랑스라 읽는다. 과 전쟁시 중립을 지키겠다는 조약.[6] 북부는 러시아가, 남부는 영국이, 중부는 중립 지역으로 남겨놓기로 합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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