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형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염형우(廉亨雨)
생몰
강원도 김화군 김화읍 읍내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염형우는 1901년생이며 강원도 김화군 김화읍 읍내 출신이다. 그는 1919년 당시 배재고등학교(培材高等學校)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러던 3월 1일 3.1 운동이 서울에서 발발하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후 3월 13일에 장용하, 서정기, 이춘봉(李春鳳) 등과 함께 등사판으로 “8면(面)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 및 “일본인 한국이 침략한 이래로 조선민족은 일본인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압박을 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인쇄물 20여 부를 작성하여 각 집에 배포하였다. 또 3월 22일과 25일에 걸쳐 항일 유인물 <반도의 목탁(木鐸)> 제3호 등을 인쇄하여 배포하다가 이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8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으며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30년 9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염형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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