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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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연 의공 4년(기원전 545년), 연 의공이 재위 4년 만에 사망하자, 태자인 희관이 그 뒤를 이었다.
연 혜공 원년(기원전 544년) 9월, 제(齊)나라 대신 고지가 연나라로 달아났다.[3]
연 혜공 6년(기원전 539년), 당시 연 혜공이 아끼는 신하들이 많았는데 그 중 대부 송(大夫 宋)을 가장 아꼈다. 그 해 겨울, 신하들이 모여 송을 죽이고 연 혜공은 두려워하며, 제나라로 달아났다.
연 혜공 9년(기원전 536년), 연 혜공이 제나라로 달아난지 4년 만에[4] 제경공이 상국 고언(高偃)을 시켜 진(晉)나라에 가서 함께 연나라를 치라고 했다. 그 이유는 연 혜공을 복귀시켜 연나라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함이었다. 진(晉)나라의 군주인 진평공(晉平公)은 그것에 동의했다. 12월, 제 경공은 진(晉)나라와 함께 연나라를 쳤다. 그리고 연 혜공이 복귀했는데, 오래지 않아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하고 그 동생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연 도공이다.[5]
연 혜공 원년(기원전 544년) 9월, 제(齊)나라 대신 고지가 연나라로 달아났다.[3]
연 혜공 6년(기원전 539년), 당시 연 혜공이 아끼는 신하들이 많았는데 그 중 대부 송(大夫 宋)을 가장 아꼈다. 그 해 겨울, 신하들이 모여 송을 죽이고 연 혜공은 두려워하며, 제나라로 달아났다.
연 혜공 9년(기원전 536년), 연 혜공이 제나라로 달아난지 4년 만에[4] 제경공이 상국 고언(高偃)을 시켜 진(晉)나라에 가서 함께 연나라를 치라고 했다. 그 이유는 연 혜공을 복귀시켜 연나라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함이었다. 진(晉)나라의 군주인 진평공(晉平公)은 그것에 동의했다. 12월, 제 경공은 진(晉)나라와 함께 연나라를 쳤다. 그리고 연 혜공이 복귀했는데, 오래지 않아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하고 그 동생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연 도공이다.[5]
[1] 달리 간공(簡公)이라고도 한다[2] 그 까닭은 후술.[3] 고지는 제나라의 대성인 고씨 가문의 일원이다.[4] 달아난 해까지 합산하면 4년이 된다.[5] 동생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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