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내용 [편집]
국사편찬위원회 연산군일기 전문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 일기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남겨진 실록.[1] 연산군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다른 왕과는 달리 일기수찬(日記修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광해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494년 12월 25일부터 폐위된 1506년 9월 2일까지의 역사를 다룬 실록으로, 연산군 사망 직후인 1506년(중종 1년) 11월에 편찬을 시작하여 1509년(중종 4년) 음력 9월 12일에 완성하였다.
주요 편찬자는 처음에는 김감(金勘)이었으나 편찬 시작 3개월만인 1507년(중종 2년) 음력 2월에 김감이 대신 암살사건으로 유배를 가면서 대제학 신용개로 교체되었다.[2] 그러나 음력 4월 정부에서 연산군 때 은총을 입은 자들이 일기를 편찬하면 직필이 어려울 것이라는 건의에 따라 또 다시 수찬관이 성희안, 신용개, 김전 등으로 교체되었다.
연산군일기는 중종반정으로 집권한 이들이 연산군의 비행을 과장하기 위해 사초의 내용을 윤색한 흔적이 보이며, 연산군의 폭정을 과장하기 위해 객관성이 결여된 서술을 많이 했다는 지적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 일기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남겨진 실록.[1] 연산군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다른 왕과는 달리 일기수찬(日記修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광해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494년 12월 25일부터 폐위된 1506년 9월 2일까지의 역사를 다룬 실록으로, 연산군 사망 직후인 1506년(중종 1년) 11월에 편찬을 시작하여 1509년(중종 4년) 음력 9월 12일에 완성하였다.
주요 편찬자는 처음에는 김감(金勘)이었으나 편찬 시작 3개월만인 1507년(중종 2년) 음력 2월에 김감이 대신 암살사건으로 유배를 가면서 대제학 신용개로 교체되었다.[2] 그러나 음력 4월 정부에서 연산군 때 은총을 입은 자들이 일기를 편찬하면 직필이 어려울 것이라는 건의에 따라 또 다시 수찬관이 성희안, 신용개, 김전 등으로 교체되었다.
연산군일기는 중종반정으로 집권한 이들이 연산군의 비행을 과장하기 위해 사초의 내용을 윤색한 흔적이 보이며, 연산군의 폭정을 과장하기 위해 객관성이 결여된 서술을 많이 했다는 지적도 있다.
3. 바깥고리 [편집]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