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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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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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계
김성원
이순재
김희준
사미자
(1970년)
안인숙[2]
(1971년)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여운계
(1974년)
김자옥
정혜선
안인숙
(1975년)

여운계
呂運計 | Yeo Un-gye
출생
사망
2009년 5월 22일[4] (향년 69세)
국적
본관
신체
163cm, 58kg
배우자
배우자 차상훈
자녀
슬하 1남 1녀
학력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종교
데뷔
1962년 KBS 공채 탤런트

목차
1. 생애2. 출연작

1. 생애 [편집]

대한민국배우.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6] 1962년에 실험극단 단원으로 지내다가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한 뒤 1964년 TBC의 공채 탤런트에 다시 합격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일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의 시골 다방 마담 역할로 안방극장에 데뷔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24세 때부터 벌써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길은정이 직장암 투병으로 하차하고 EBS의 어린이 프로 만들어 볼까요에서 만들기 할머니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2007년 신장암으로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 중도 하차하고[7] 투병 생활을 하다가 3달 후 재기한다.

그러나 2009년 폐렴에 걸려 촬영 도중 중도 하차했다가, 뒤늦게 신장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2009년 5월 22일에 향년 69세로 사망했다.

전원주, 나문희, 선우용녀, 사미자와 친한 관계였으며, 전원주, 사미자와는 본인들의 성(姓)을 따 '여전사' 모임이라 칭하기도 했다.

견미리와 거의 모녀지간이나 다름 없이 지냈으며 실제로 견미리가 사석에서 여운계를 '엄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1972~1974년에 같은 동네에 있던 당시 고등학생이던 손석희와 탁구 복식조를 하였다.

2. 출연작 [편집]

2.1. KBS [편집]

2.2. SBS [편집]

2.3. MBC [편집]

2.4. 영화 [편집]


[1] 첫 시상식[2] 1971년에는 대상 없이 남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3] 첫 시상식[4] 공교롭게도 노무현 前 대통령과는 기일이 하루 차이이다.[5] 29세손 '운(運)'자 항렬로 이 항렬에 유명한 사람이 바로 여운형이다.[6] 당시는 전국에 대학생이 10만여 명에 불과하여 열 명에 한 명도 안 되던 때이다. 여성은 훨씬 더 드물던 시절이고, 특히 연예계에는 대학 나온 사람이 남자도 몇 명 안 될 정도로 흔치 않았다.[7] 그러나 당시 맡은 배역이 주인공 김처선이라든가 기타 내시 역할의 조연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한 역할이어서 배역 자체를 없애지 않고 김수미가 여운계의 배역을 대신 맡았다.[8] 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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