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광의 적장자로 383년 전진의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고 화북지역이 혼란스러워지자 구지(仇池)로 피신했다가 아버지가 후량을 건국하자 아버지한테 돌아가서 태자로 책봉받았다. 여광이 죽자 황제에 즉위했으나 병권은 여찬이 잡고 있었기에 그에게 양위하고자 했으나 여찬은 거절했다.
얼마 안가 여찬이 반란을 일으키고 궁을 점령하자 여소는 자살했으며 사후 시호는 은왕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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