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문환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중국 남송 말기의 명장. 남송이 몽골의 침략을 버틸 수 있는 마지막 힘을 준 인물이다.
2. 상세 [편집]
남송 숙주 안풍 출신으로, 여문환은 당시 형이었던 여문덕과 함께 양양 수비를 맡았다.
쿠빌라이 칸이 이끄는 남송 원정군이 남송을 침공해오자, 여문환은 형제들과 함께 1267년부터 1273년까지[1] 몽골의 원정대를 상대로 6년 동안 공격을 버텨낸다. 하지만 양양성의 보급 부족과 몽골군에서 도입한 새로운 병기인 회회포까지 동원되자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이후 여문환은 쿠빌라이 칸에게 중용되었으며, 여문환의 항복과 양양의 함락으로 인해 결국 남송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남송의 수도 임안이 함락될 때, 여문환이 항복을 권고하였는데 남송 최후의 승상이었던 문천상은 여문환에 대해 역신이라고 비난하였고 여문환은 문천상의 비난에 크게 부끄러워했다. 이후 중서좌승이 되어 강동을 위무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1279년 애산 전투에서 남송이 완전히 멸망한 이후 1286년에는 자신이 맡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쿠빌라이 칸이 이끄는 남송 원정군이 남송을 침공해오자, 여문환은 형제들과 함께 1267년부터 1273년까지[1] 몽골의 원정대를 상대로 6년 동안 공격을 버텨낸다. 하지만 양양성의 보급 부족과 몽골군에서 도입한 새로운 병기인 회회포까지 동원되자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이후 여문환은 쿠빌라이 칸에게 중용되었으며, 여문환의 항복과 양양의 함락으로 인해 결국 남송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남송의 수도 임안이 함락될 때, 여문환이 항복을 권고하였는데 남송 최후의 승상이었던 문천상은 여문환에 대해 역신이라고 비난하였고 여문환은 문천상의 비난에 크게 부끄러워했다. 이후 중서좌승이 되어 강동을 위무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1279년 애산 전투에서 남송이 완전히 멸망한 이후 1286년에는 자신이 맡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1] 여문덕은 양양 공성전이 벌어지던 중인 1269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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