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어대선(魚大善)
이습(而習)
시재(時齋)
생몰
경기도 용인현 하마피마을[1]
(현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
사망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어대선은 1871년 9월 6일 경기도 용인현 하마피마을에서 윤응(允膺)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릴 때 생부가 돌아가셔서 윤하(允河)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 전답이 많고 집도 여러 채 있는 유복한 지방에서 성장했다고 하며, 용인 향교에 위치한 명륜학교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19년 1월 고종이 붕어하자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고,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식에 참석한 뒤 군중과 함께 대한문과 서대문 방면으로 행진했다. 이어 3월 5일에도 청량리에서도 독립만세시위에 참석했다. 그는 군중 앞에서 연설하고자 했지만 원고를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후에 신문조서에서 밝힌 연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의 식에 즈음하여 나는 2천만 동포에게 고할 것은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파리에서는 민족자결주의가 일어나고 있으니 조선도 독립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3월 1일에 만세를 불렀을 정도만으로는 그 실효를 거두기가 어려우므로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여 가며 그 실효를 거두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20년 4월 8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병보석으로 가석방된 뒤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어대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함종 어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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