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영화)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알리 (2001) Ali | |
장르 | |
감독 | |
각본 | |
기획 | 리 카프린 그레이엄 킹 |
제작 | |
출연 | |
촬영 | |
편집 | 윌리엄 골든버그 린지 클링먼 스티븐 E. 리브킨 스튜아트 왁스 |
미술 | 존 마이어 |
음악 | 리사 제라드 피터 브룩 |
주제곡 | |
의상 | 말린 스튜어트 |
제작사 | 파일:미국 국기.svg 컬럼비아 픽처스, 포워드 패스, 이니셜 엔터테인먼트 그룹(IEG), 문라이팅 필름스, 오버북 엔터테인먼트, 피터스 엔터테인먼트, 픽처 엔터테인먼트 |
수입사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코리아픽처스, 아름다운영화사 |
배급사 | |
개봉일 | |
화면비 | 2.39 : 1 |
상영 시간 | 157분 165분 (감독판) |
제작비 | $107,000,000 (추정) |
월드 박스오피스 | $87,812,729 |
북미 박스오피스 | $58,203,105 |
대한민국 총 관객 수 | 서울 관객 62,348명, 전국 관객 154,563명 |
국내 스트리밍 | |
1. 개요 [편집]
2. 예고편 [편집]
예고편 |
3. 시놉시스 [편집]
영화는 1964년에서 1974년까지, 알리가 처음으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딴 날부터 부당하게 빼앗긴 타이틀을 다시 되찾는 조지 포먼과의 경기까지 10년을 아우른다. 사건의 전말은 결국 두 번의 중요한 권투시합이다. 그런데 두 사건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세상은 시끌시끌하여 미국이 베트남 참전을 선언하고, 버클리 대학에서 학생운동이 시작된다. 흑인민권운동, 여성해방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도 이 시기이다. 비틀스가 미국을 평정하고, 말콤 X가 암살당한다. 역사책 한 챕터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이 숨가쁜 시대의 한복판에 무하마드 알리가 있다. |
4. 등장인물 [편집]
5. 줄거리 [편집]
5.1. 1964년 [편집]
1964년 2월 26일, 22세의 카시우스 클레이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턴의 도전자로 링 위에 선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며 당당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던 그는
8라운드에서 리스톤을 KO로 쓰러뜨리며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며 당당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던 그는
8라운드에서 리스톤을 KO로 쓰러뜨리며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5.2. 1967년 [편집]
그러나 1967년,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함으로써 부당하게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국내에서의 시합은 물론 출국조차 금지당한다.
이로 인해 알리는 권투 선수로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안타깝게 흘려보내게 된다.
국내에서의 시합은 물론 출국조차 금지당한다.
이로 인해 알리는 권투 선수로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안타깝게 흘려보내게 된다.
5.3. 1971년 [편집]
5.4. 1974년 [편집]
이제 1974년, 권투 선수로서는 은퇴를 고려해야 한다고 평가되는 32세가 된 알리.
맨주먹 하나로 부당하게 빼앗긴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 포먼에게 마침내 공식 도전한다.
한편, 포먼은 24세의 젊은 나이에 40연승의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엄청난 파괴력의 소유자.
언론도, 관중도 포먼의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했다.
알리만이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합 5일전, 컨디션 최종 정리 스파링 중
포먼은 눈 주위에 부상을 입어 부득이 시합을 6주 연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4년 10월 30일, 경기장에 모여든 열광적인 관객과 전세계 10억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전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그리고 알리는 가장 드라마틱하게 재기전을 펼치며 자신의 위대성을 증명했다.
'아무도 꺾을 수 없다'던 24세의 무적의 조지 포먼을 KO로 눕히고,
10년전 부당하게 빼앗긴 벨트를 되찾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세기의 대결 '아프리카 격전'이었다.
맨주먹 하나로 부당하게 빼앗긴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 포먼에게 마침내 공식 도전한다.
한편, 포먼은 24세의 젊은 나이에 40연승의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엄청난 파괴력의 소유자.
언론도, 관중도 포먼의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했다.
알리만이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합 5일전, 컨디션 최종 정리 스파링 중
포먼은 눈 주위에 부상을 입어 부득이 시합을 6주 연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4년 10월 30일, 경기장에 모여든 열광적인 관객과 전세계 10억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전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그리고 알리는 가장 드라마틱하게 재기전을 펼치며 자신의 위대성을 증명했다.
'아무도 꺾을 수 없다'던 24세의 무적의 조지 포먼을 KO로 눕히고,
10년전 부당하게 빼앗긴 벨트를 되찾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세기의 대결 '아프리카 격전'이었다.
6. 평가 [편집]
Though perhaps no film could fully do justice to the fascinating life and personality of Muhammad Ali, Mann's direction and Smith's performance combine to pack a solid punch.
7. 흥행 [편집]
7.1. 대한민국 [편집]
한국에서 개봉 당시 상영시간이 길다고 수입사인 아름다운 영화사가 30분을 가위질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30분 가까이 삭제하고 개봉했다가 며칠 후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더더욱 극장에서 외면당했다.
최종 관객수는 서울 62,348명, 전국 154,563명.
최종 관객수는 서울 62,348명, 전국 154,563명.
8. 수상 및 후보 이력 [편집]
9. 기타 [편집]
- 윌 스미스는 출연하기 전까지 자신이 알리를 연기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5번, 비공식적으로는 40번을 거절 했다고 한다. 힘든 과정을 거쳐 캐스팅된 그는 진짜 무하마드 알리가 되기 위해 실제 복싱 선수들의 운동법을 소화해 1년 가까이 새벽 조깅과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16kg의 근육을 만들었고, 링에선 대역 없이 본인이 직접 연기했다. 그 결과 알리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데 성공한 윌 스미스는 블록버스터 배우의 이미지를 뒤집었고,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랐다.
10. 관련 문서 [편집]
11. 바깥 고리 [편집]
12.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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