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대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조선 목조의 왕자 안창대군 安昌大君 | ||
안창대군(安昌大君) | ||
전주(全州) | ||
매불(梅拂) | ||
부왕 | ||
모후 | 효공왕후 이씨 (孝恭王后 李氏) | |
부인 | 평산부부인 평산 신씨(平山府夫人) | |
자녀 | 2남 | |
묘소 | ||
생몰 기간 | ? ~ ? | |
사망지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3. 묘소 [편집]
“덕이 있는 이는 반드시 후사가 있다(有德者必有後)는 말을 들었더니 이를 두고 여기에서 공의 덕이 훌륭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신도비에 적혀 있다고 전해진다.
4. 후손 [편집]
후손들은 함경남도 함흥을 중심으로 한 50리 이내의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다. 이중 육현사(六賢祠)는 임진왜란 공신인 증참판 일남(一男) 외 5인을 배향하는 곳이다.
1900년 방계 후손 진사 이면하(冕夏)가 덕을 기려 비문에 이렇게 썼다.
1900년 방계 후손 진사 이면하(冕夏)가 덕을 기려 비문에 이렇게 썼다.
“선원(璿源) 리씨 옛 집안에 대군께서는 높은 벼슬이었도다(璿李古家大君崇爵). 유풍(遺風)은 돈목함이 있었고 덕의 베풂을 넓게 베풀으셨네(風有敦睦德施宏博). 성왕(聖王)의 은총과 덕택을 후손들이 흠모하여 받드는 구나(聖王 恩澤後生欽恪). 추모의 마음은 정성을 다하여 비를 세우고 비각을 짓네(追感徵誠竪碑營閣).”
현재 후손들은 향리에서 1860년 이래 이어져 오던 종 사가 1950년 6.25전쟁 이후 어떤 실정인지 알 길이 없으나 월남한 후손들은 각 지파에서 1970년도부터 전국에 산재한 종원들과 종회(宗會)를 재정비 하였다.
[1] 진짜 있는지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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