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조선 성종의 왕자 안양군 安陽君 | ||
안양군(安陽君)[1] | ||
공회(恭懷) | ||
전주(全州) | ||
항(㤚) | ||
성의(聖儀) | ||
만송(晩松) | ||
부왕 | ||
생모 | 귀인 정씨(貴人 鄭氏) | |
부인 | 면천군부인 능성 구씨(綾城 具氏) | |
자녀 | 1남 | |
묘소 |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 |
생몰 기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504년(연산군 10년) 4월 4일[2] 밤, 폐비 윤씨 사사사건의 원인이 성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생모)와 귀인 엄씨의 참소에 있다고 생각한 연산군이 분노하여 두 후궁을 끌고와 모진 고문을 가하다가 안양군과 봉안군을 데려와 생모인 정씨를 때리게 했다.[3]
그러나 눈치가 빨랐던 봉안군은 자신의 생모인 줄 알고 있어서 차마 때리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울었다. 하지만 안양군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때렸다. 연산군의 매질로 결국 귀인 정씨는 사망했고 시신은 젓갈로 담궈져 내버려졌다.
이후 제천에 안치되고 가재는 적몰(籍沒) 된 다음 이듬해인 1505년(연산군 11년) 동생 봉안군과 함께 사사되었다.
옥담 이응희는 안양군의 현손이며 생전에 저술이 많았는데, 병자호란 때 방화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저서로는 17세기 조선의 향촌 생활을 생생하게 담은 『옥담유고(玉潭遺稿)』, 『옥담사집(玉潭私集)』 등이 있다.
몇명 없는 알려진 후손 중에는 신화 멤버 이민우와 독립운동가 이영선 (李英善)이 있다. 이민우는 전주 이씨 안양군파 17세손이다.
그러나 눈치가 빨랐던 봉안군은 자신의 생모인 줄 알고 있어서 차마 때리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울었다. 하지만 안양군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때렸다. 연산군의 매질로 결국 귀인 정씨는 사망했고 시신은 젓갈로 담궈져 내버려졌다.
이후 제천에 안치되고 가재는 적몰(籍沒) 된 다음 이듬해인 1505년(연산군 11년) 동생 봉안군과 함께 사사되었다.
옥담 이응희는 안양군의 현손이며 생전에 저술이 많았는데, 병자호란 때 방화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저서로는 17세기 조선의 향촌 생활을 생생하게 담은 『옥담유고(玉潭遺稿)』, 『옥담사집(玉潭私集)』 등이 있다.
몇명 없는 알려진 후손 중에는 신화 멤버 이민우와 독립운동가 이영선 (李英善)이 있다. 이민우는 전주 이씨 안양군파 17세손이다.
3. 창작물에서 [편집]
드라마에서 갑자사화시기 쯤에 동생인 봉안군과 세트로 등장한다.
관복을 입고 끌려온 왕과 비를 제외하면 대부분 흰 옷만 입은채로 끌려오는 씬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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