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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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왕후(安順王后) | |||
인혜명의소휘제숙안순왕후(仁惠明懿昭徽齊淑安順王后) | |||
사망지 | 경복궁 자경전 | ||
본관 | 청주(淸州) | ||
배우자 | 예종(睿宗) | ||
아버지 | 청천부원군 한백륜 | ||
어머니 | 서하부부인 임씨 | ||
생몰 기간 | 음력 | ||
양력 | 1445년 3월 12일 ~ 1499년 2월 3일(향년 55세, 만 53세) | ||
재위 기간 | |||
왕비 | |||
왕대비 | 1469년 ~ 1494년 | ||
대왕대비 | 1494년 ~ 1498년 | ||
1. 일생 [편집]
1.1. 왕세자의 후궁이 되다 [편집]
1.2. 남편의 요절 [편집]
1.3. 서열 3위의 왕대비가 되다 [편집]
그걸로 모자랐던 모양인지 맏며느리에 성종의 친어머니라는 이유로 인수대비에게 평생을 치여서 살게 된다. 사가의 법도대로 인수대비가 안순왕후보다 첫째 서열이라고 신하들이 정해버려서 그렇다.
연산군이 즉위하고 대왕대비가 되었는데, 이때도 인수대왕대비가 계속 생존해 있었고 심지어 인수대왕대비보다 먼저 승하해서 생의 말년까지 별다른 힘을 가진 적이 없다.
아들 제안대군 때문에 며느리를 2번이나 내쫓았다. 첫 번째 며느리 김씨는 간질을 앓아 제안대군이 싫어하고 손자를 보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에 내쫓았다.
2번째 며느리 박씨 역시 제안대군과 사이가 좋지 않던 와중에,싫다고 내쫓을 때는 언제고 전 부인과 재결합하고 싶어하던 제안대군이 자작극[3]까지 벌이자 결국 자신에게 불손하다는 핑계로 쫓아내게 된다.[4]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제안대군은 끝내 자식을 보지 못했다.
슬하에 2남 2녀를 낳았지만 왕자 한 명과 혜순공주는 일찍 요절했고, 남은 1남 1녀인 제안대군이나 현숙공주나 배우자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둘다 끝내 자식을 낳지못해서 안순왕후는 평생 손주를 보지 못한다.
말년에는 당뇨병을 심하게 앓다가 1498년 54세 나이로 경복궁에서 세상을 떠난다.
연산군이 즉위하고 대왕대비가 되었는데, 이때도 인수대왕대비가 계속 생존해 있었고 심지어 인수대왕대비보다 먼저 승하해서 생의 말년까지 별다른 힘을 가진 적이 없다.
아들 제안대군 때문에 며느리를 2번이나 내쫓았다. 첫 번째 며느리 김씨는 간질을 앓아 제안대군이 싫어하고 손자를 보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에 내쫓았다.
2번째 며느리 박씨 역시 제안대군과 사이가 좋지 않던 와중에,
슬하에 2남 2녀를 낳았지만 왕자 한 명과 혜순공주는 일찍 요절했고, 남은 1남 1녀인 제안대군이나 현숙공주나 배우자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둘다 끝내 자식을 낳지못해서 안순왕후는 평생 손주를 보지 못한다.
말년에는 당뇨병을 심하게 앓다가 1498년 54세 나이로 경복궁에서 세상을 떠난다.
2. 대중 매체에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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