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징허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쑤징허(蘇景和, 소경화)
출생
사망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편집]

외국인 독립운동 유공자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인물. 이명 쑤찌앤궈(蘇建國).

2. 생애 [편집]

1918년 10월 1일,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 베이다이허(北戴河) 구에서 태어났다.#

1944년 난징 중앙대학 재학 시절 같은 학교에서 유학하던 조일문(趙一文)씨와 만남으로 '일제에 대항하여 나라를 되찾자'며 의기투합했다. 이후 쑤징허는 난징 내 일본군 동향 수집, 광복군 초모 활동, 광복군 입대 청년 호송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1944년 전후해 이 무렵부터 쑤징허는 본격적으로 한인 청년들을 시안으로 이동시키는 임무에 나섰다. 이후 그는 세 차례 한인 청년들을 시안의 광복군 부대까지 호송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시안으로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 한인 청년들은 줄잡아 100여명.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었다고 한다.

그의 공로를 인정해 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은 광복 직후 그에게 '포상장'을 수여했다.

그렇지만 중국 최고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전도유망하던 청년이던 그가 타국의 독립운동을 도와 치러야 했던 대가는 컸다.

신중국 건립 직후인 1950년 그는 우리나라의 행정고시와 같은 간부 선발 시험에 합격해 화동지역 물자공급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시기 당시 적대 관계이던 '한국'을 도운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정치적 박해를 받고 온 가족이 안후이성 시골 농장으로 하방돼 생활하는 고난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1992년 한중수교 직후 생사를 함께하던 옛 한국인 동지들과의 재회로 다시 만난 조일문 지사 등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우리 정부로부터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아 명예를 회복하면서 다소간의 위로를 받았다.

이후 중국 상하이시 푸둥신구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 부부와 함께 살다가 건강이 악화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0202월 9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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