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식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종교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심영식은 1887년 7월 15일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북본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가톨릭에 입교했고, 심명철(沈明哲)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어린 시절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결혼 후 아들이 9살이 되던 때에 남편마저 사망했기에 홀로 자식을 키워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업에 뜻을 두었고, 개성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1]를 졸업했다.
1919년 3월 3일 개성군 송도면에서 모교인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군중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형사가 "맹인 주제에 시위에 왜 가담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1919년 3월 3일 개성군 송도면에서 모교인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군중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형사가 "맹인 주제에 시위에 왜 가담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눈이 멀었을지언정 마음까지 멀었겠느냐? 눈이 멀었을지언정, 나라의 독립을 원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다."
3. 기타 [편집]
- 2020년 8월 12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에 심영식의 아들 문수일 씨가 출연했다. 그는 어머니가 "옥중 생활 이야기를 하셨는데, 간수한테 가끔 불려 나가서 뺨을 많이 맞았다. 그래서 한 쪽 고막이 터져서 돌아가실 때까지 귀에서 고름이 나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쓰시던 안경을 가져왔다. 그는 "돌아가실 때까지 쓰시던 안경"이라며 "지금 보니까 안경이 조그마하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