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계월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본관 | |
출생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심계월은 1916년 1월 6일 함경남도 갑산군 산남면 상리(현 량강도 풍서군 상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함남 삼수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함흥원잠종제조강습소(咸興原蠶種製造講習所)에 입소했다가 도중 퇴소하였다. 이후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신당리 문화동(현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5동)으로 이주하여 살았으며, 경성여자상업학교에 재학하였다. 1929년 9월 학교 입학 이후 교내 독서회를 조직하여 9월 30일까지 토요일마다 세 차례에 걸쳐 회의를 하고, 그 주간에 연구한 것을 상호 발표 비판하면서 의식수준의 향상을 도모하는 등 신사상 연구와 동지 규합을 위해 활동했다.
심계월은 1933년 1월경 학우인 이분성(李粉星)의 소개로 이재유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활동에 매진하게 되었다. 1934년 5월 김월옥(金月玉), 이현우(李鉉雨)와 만나 '코민테른 제13회 테제'를 지침으로 한 공산주의 활동에 더욱 진력할 것을 결의하였다. 6월부터 김명식(金明植), 이인행(李仁行) 등을 만나 사상사건으로 도피 중인 동지들에 대한 자금과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의 협의를 나누고 이를 실행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이 일경에 적발되어 같은 해 8월 이후 치안유지법 위반 및 방조, 범인장닉으로 체포되었으며, 1936년 7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미결구류 250일 통산)을 선고받고 다음날인 31일 서대문형무소에 입소하여 옥고를 치렀다. 1937년 11월 22일 출옥한 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심계월은 1933년 1월경 학우인 이분성(李粉星)의 소개로 이재유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활동에 매진하게 되었다. 1934년 5월 김월옥(金月玉), 이현우(李鉉雨)와 만나 '코민테른 제13회 테제'를 지침으로 한 공산주의 활동에 더욱 진력할 것을 결의하였다. 6월부터 김명식(金明植), 이인행(李仁行) 등을 만나 사상사건으로 도피 중인 동지들에 대한 자금과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의 협의를 나누고 이를 실행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이 일경에 적발되어 같은 해 8월 이후 치안유지법 위반 및 방조, 범인장닉으로 체포되었으며, 1936년 7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미결구류 250일 통산)을 선고받고 다음날인 31일 서대문형무소에 입소하여 옥고를 치렀다. 1937년 11월 22일 출옥한 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3. 기타 [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심계월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