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신순우(申淳雨) |
이명 | 신원(申源) |
본관 |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편집]
신순우는 1923년 1월 9일 경기도 진위군 청북면(현 평택시 청북읍) 고잔리에서 아버지 신소휴(申紹休)와 어머니 순흥 안씨 안수(安壽)의 딸 사이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34년 경성부 마포 소재 신흥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1942년 중국군관학교에 유학할 목적으로 중국에 왕래하는 일본 상선에 승선, 난징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조선인 지하공작원 박영학(朴永鶴)[4] 등과 접촉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45년 한국 광복군 징모제3분처에 입대, 지하공작 책임자로 임명되어 초모공작 및 지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해 절강하교작전(浙江河橋作戰)에 참전하여 공적을 세우기도 했다.
8.15 광복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1992년 3월 12일 평택시에서 사망했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1942년 중국군관학교에 유학할 목적으로 중국에 왕래하는 일본 상선에 승선, 난징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조선인 지하공작원 박영학(朴永鶴)[4] 등과 접촉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45년 한국 광복군 징모제3분처에 입대, 지하공작 책임자로 임명되어 초모공작 및 지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해 절강하교작전(浙江河橋作戰)에 참전하여 공적을 세우기도 했다.
8.15 광복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1992년 3월 12일 평택시에서 사망했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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