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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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자신, 또는 남의 불행이나 실패의 경험, 예측 또는 회고(回顧)를 수반한 우울한 정서를 말한다. 혈액순환이 약해지고, 호흡이 느려지며, 안색이 창백해지고, 흔히 눈물을 흘린다.
감정들 중 나약함과 무기력함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기도 하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이 슬퍼해야 할 것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1] 비인간적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노나 증오와 같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감정들은 슬픔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뒤흔든 사회운동들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 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 감정은 때로 좌절과 고통을 수반하고, 지나칠 경우 자해나 자살을 유발할 수도 있으나, 수많은 문화나 성인 및 문명의 발전은 이 감정을 통해 이루어졌다.[2] 슬픔은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 흥분이 심해지다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데, 분노와 슬픔이 주로 그렇다. 분노의 경우에는 제대로 폭발시켜서 신중을 잃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지만, 슬픔은 진정시키고 현재 상황을 검토시키는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더 나은 상황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축 처지면 역시 건강과 인간 관계상 좋지 않고, 분노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가 되기도한다.
슬픔은 기쁨보다 훨씬 보편적인 감정이다. 슬픔을 겪은 사람은 타인의 슬픔에 반응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알며, 위로할 줄 안다. 위로받은 슬픔은 인생의 실패나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설 원동력이 된다. [3]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바로 슬픔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장기간 슬픈 경우 우울증이 되지만, 그렇다고 아예 슬픔을 배제해버리면 오히려 그 상처가 곪아 조울증이나 증오나 분노같은 감정으로 바뀌어, 현실적이지 못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기에, 슬픔 또한 어느정도 받아들여야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감정들 중 나약함과 무기력함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기도 하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이 슬퍼해야 할 것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1] 비인간적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노나 증오와 같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감정들은 슬픔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뒤흔든 사회운동들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 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 감정은 때로 좌절과 고통을 수반하고, 지나칠 경우 자해나 자살을 유발할 수도 있으나, 수많은 문화나 성인 및 문명의 발전은 이 감정을 통해 이루어졌다.[2] 슬픔은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 흥분이 심해지다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데, 분노와 슬픔이 주로 그렇다. 분노의 경우에는 제대로 폭발시켜서 신중을 잃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지만, 슬픔은 진정시키고 현재 상황을 검토시키는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더 나은 상황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축 처지면 역시 건강과 인간 관계상 좋지 않고, 분노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가 되기도한다.
슬픔은 기쁨보다 훨씬 보편적인 감정이다. 슬픔을 겪은 사람은 타인의 슬픔에 반응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알며, 위로할 줄 안다. 위로받은 슬픔은 인생의 실패나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설 원동력이 된다. [3]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바로 슬픔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장기간 슬픈 경우 우울증이 되지만, 그렇다고 아예 슬픔을 배제해버리면 오히려 그 상처가 곪아 조울증이나 증오나 분노같은 감정으로 바뀌어, 현실적이지 못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기에, 슬픔 또한 어느정도 받아들여야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 기타 [편집]
4. 관련 어록 [편집]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슬픔은 찰나의 고뇌이며, 슬픔에 빠지면 인생을 망친다."
- 벤자민 디즈레일리
"슬픔만큼 불쾌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다. 초기의 슬픔은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지만, 슬픔이 만성화되면 조소를 받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 세네카
지나친 슬픔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파괴를 낳고
파괴는 죽음을 낳고
죽음은 다시 슬픔을 낳는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 엘라 윌콕스[6]
슬픔이라는 감정은 지속되면 한이라는 감정을 낳게 된다.
슬픔이 지속되면 한은 급격히 커지게 되고,
그 극대화 된 한은 고통, 분노, 증오 보다도 더 강하다.
라르 - 판도라의 아이들[7]
5. 관련 문서 [편집]
[1] 사단에서도 말하는 측은지심.[2]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이 감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3]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퍼서 쳐진 빙봉을 위로할 수 있었던 건 기쁨이가 아니라 슬픔이었다. 또, 고장난 계기판을 고치고 박살난 인격 섬을 복원한 것도 절반 이상 슬픔이의 공적이다. 이 영화가 심리학적 고증이 매우 잘 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상황이 상당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4] 단 여기서 말하는 슬픔은 영어론 despair로, 슬픔보단 절망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잘 맞는다.[5]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마태복음 5장 4절에 유사한 문구가 있으나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6] 고독이란 시의 구절. 영화 올드보이에서도 인용되었다.[7] 케이넷 피 에서 만든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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