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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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 SBS Sports 해설위원 | |
이순철 (李順喆 / Lee Soon-Chol) | |
생년월일 | |
출신지 | |
국적 | |
배우자 | |
자녀 | |
학력 | |
신체 | 173cm / 81kg |
포지션 | |
투타 | |
프로입단 | |
소속팀 | |
지도자 | |
해설위원 | |
병역 | |
종교 | |
링크 | |
1. 개요 [편집]
대한민국의 야구인.
前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외야수. 現 SBS, SBS Sports의 해설위원이자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회장.
최고의 리드오프이자 최악의 감독, 그리고 모두까기의 달인 해설위원이라는 입지를 다지며 비교적 옛날 야구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야구팬들에게 인지도가 높다.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신인왕[5]으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1997년까지 쭉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서 뛰다가 해태에서 방출된 뒤 1998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1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와 LG 트윈스의 코치를 거쳐 2004년 LG 트윈스의 감독이 되었으나, 최악의 모습을 보임과 함께 성적 부진으로 2006년 시즌 중반에 자진 사퇴하고 만다. 2007년에는 MBC ESPN의 해설자로 활약. 2008년에 신생 팀 우리 히어로즈의 코치로 활동하였고 이듬해에는 2009 WBC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WBC 이후 MBC ESPN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돌아와 활동했고, 2011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의 선동열 감독 취임과 함께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별명은 이름의 '철'자를 금속의 종류 중 하나인 철의 원소기호 Fe를 붙여서 바꾼 '순Fe'[6], '순페이'[7][8], 비난해설로 인해 생긴 '이거성', 모두 다 까고 모두에게 까인다고 붙은 '모두까기 인형' 등이 있다.
또한 20홈런 시즌과 50도루 시즌을 모두 경험한 단 3명 중 한명이다. 다른 둘은 이종범과 김주찬
2017년 1월 17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로 선임되었다.
前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외야수. 現 SBS, SBS Sports의 해설위원이자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회장.
최고의 리드오프이자 최악의 감독, 그리고 모두까기의 달인 해설위원이라는 입지를 다지며 비교적 옛날 야구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야구팬들에게 인지도가 높다.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신인왕[5]으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1997년까지 쭉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서 뛰다가 해태에서 방출된 뒤 1998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1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와 LG 트윈스의 코치를 거쳐 2004년 LG 트윈스의 감독이 되었으나, 최악의 모습을 보임과 함께 성적 부진으로 2006년 시즌 중반에 자진 사퇴하고 만다. 2007년에는 MBC ESPN의 해설자로 활약. 2008년에 신생 팀 우리 히어로즈의 코치로 활동하였고 이듬해에는 2009 WBC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WBC 이후 MBC ESPN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돌아와 활동했고, 2011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의 선동열 감독 취임과 함께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별명은 이름의 '철'자를 금속의 종류 중 하나인 철의 원소기호 Fe를 붙여서 바꾼 '순Fe'[6], '순페이'[7][8], 비난해설로 인해 생긴 '이거성', 모두 다 까고 모두에게 까인다고 붙은 '모두까기 인형' 등이 있다.
또한 20홈런 시즌과 50도루 시즌을 모두 경험한 단 3명 중 한명이다. 다른 둘은 이종범과 김주찬
2017년 1월 17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로 선임되었다.
2. 선수 경력 [편집]
3. 플레이 스타일 [편집]
자신의 아바타가 누구냐는 물음에
KBO 골든글러브를 5번이나 탈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홈런생산능력+도루능력+외야수비능력 전반적인 밸런스가 좋은 선수. 다만 타율은 기복이 심한 편이다. 좋은 시즌에는 3할을 어렵지 않게 쳐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2할대 중반까지 하락하기도 한다. 따라서 통산타율은 0.265로 레전드급 선수 치고는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4년도 성적까지로 제한할 경우 타율 0.277 OPS 0.798의 웬만한 중심타자 뼘치는 기록을 자랑했다. 선수생활 후반기에 비율스탯을 와장창 까먹은 케이스.
다만 그의 타율에 가려진 다른 툴이 있었으니 바로 장타력이다. 30홈런 이상은 쳐야 거포 소리를 듣는 지금의 KBO와는 달리 이순철이 뛰던 시절의 KBO는 20개 대 홈런왕이 나오는 경우가 흔했다. 30홈런은 1988년 김성한이 때려낸 것이 최초였으며 1991년 장종훈이 35홈런으로 홈런왕이 되기 전까지 두 시즌 동안 30홈런 타자가 없었다. 이런 시대에 이순철은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1988년부터 1993년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리드 오프로서는 대단한 기록이다.
즉 이순철은 컨택 능력은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었지만(통산 타율만 보면) 출루하면 상대를 뒤흔들고 심심찮게 홈런을 때리면서 스스로 해결도 하는 당시로서는 완성형 리드오프에 가까웠다. 해태의 이런 장타력 있는 리드오프의 계보는 이후 이종범이 이어 받는다.
1998년 은퇴했을 때 야수 누적 WAR(스탯티즈 기준) 5위였다. 그의 위에는 이만수, 장종훈, 한대화, 홍현우 뿐이었다.[9]
4. 선수 은퇴 이후 [편집]
4.1. 지도자 경력 [편집]
4.2. 해설자 경력 [편집]
5. 여담 [편집]
- 선수 말년이었던 삼성 시절, 1998년 8월 8일에 친정팀 해태와의 경기에서 포수로 뜬금없이 나와서 눈길을 끌었다. 상황인 즉슨, 9회말 이전 포수였던 당시 삼성 포수의 흑역사이자 암흑기의 대명사였던 그분의 대타로 출장했다가 경기가 연장전으로 넘어가자 어쩔 수 없이 10회초 수비에서 미트를 들고 마스크를 쓴 것이었다. 나름 리드를 잘 했는지 외국인 투수 호세 파라와 같이 2이닝 동안 7타자를 상대로 1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았고 팀도 끝내기로 이겼다.
- 한편으로는 당시 LG 선수들이 태업했다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기에 선수들 탓을 안 하기도 뭣 하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LG가 2013년에 비밀번호를 끊어내서 그런 얘기는 거의 없어졌다.
- 김태균의 타법을 사무라이 타법으로 비유해 욕을 배부르게 먹기도 했다. 단순한 비유일 뿐인데 뭐가 문제냐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순철 자신조차 사무라이의 검 궤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주제에 꼭 그와 같은 비유를 할 필요는 없었지 않았나 하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 사무라이 재팬 디스를 위한 발언이었다.
- 히어로즈에서 물러난 후 2009년 MBC ESPN의 해설가로 돌아왔으며, 다시 거성 소리를 들으면서 열심히 깠다. 그를 감독으로서 겪어 본 엘빠들을 제외한 타 팀 팬들은 이렇게 작두타듯이 설명하는 그가 왜 감독으로 실패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순철이 다시 KIA의 코치로 가자 타팀 팬들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 트위터를 시작했다! 이순철의 트위터. 경기 해설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써놓고 있는데, 띄어쓰기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다. 기계치는 기계치인가보다. 삼성 모바일로 작성했다는 게 뜨는 것을 봐서는 핸드폰으로 올리는 것 같다. 점점 띄어쓰기가 잘 되어가는 편. 가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한동안 트윗글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안드로이드폰으로 바꿔서 사용법 익히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여전히 기계치다. 2016년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도 운영 중. 야구계에 비판점과 평론을 근근히 올린다. 그런글이 올라올때 치는 드립은 자양동 거주 중인 야구팬 이순철 씨.
- 가끔씩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고 '철 생각'이라고 적어놓아서 야구팬들을 폭소케했다. 흠좀무.
- 2010년은 자타공인 연장전의(그리고 장기전) 사나이. 방송 3사 해설자가 12명정도는 되는데, 2010년 벌어진 36회의 연장전중 9번 중계에서 해설을 했다. 그리고 2010년 최장시간 경기 1, 2위도 역시 이 사람의 몫.
- 2010년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해설진의 승자예상을 하다가 특유의 비난해설을 하면서 의외의 적중률을 보였다. 역시 모두까기인형. 아니, 밸런스 조절자인가? 그런데 적중했다! 역시 야구 보는 눈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 한국의 첫 여성 승마선수로 알려진 이미경 씨와 결혼했다. 연세대 재학 시절 마주치자마자 이순철이 첫눈에 반해 열심히 대쉬한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 2014년 8월 6일, NC 대 롯데의 사직 경기에서 관중이 경기장에 쓰레기를 투척하자 저런 관중은 다시는 야구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깠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당사자가 정작 2006년에 방망이 투척 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 2014년 12월 1일 기사를 통해 FA 시장에 거품이 지나치다며 나름의 대안을 내놨는데...이순철의 진심 "FA 광풍 대안? 보호선수 15명으로 줄여라" 그야말로 FA 제도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방법을 해법이랍시고 제시해 야구팬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안그래도 KBO의 현 제도로는 준척급선수들이 FA를 신청하기 어려움이 따르는기에 보상제도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몇년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는 실정에서, 오히려 보호선수를 줄여야한다는건 그냥 특A급 선수가 아니면 FA는 꿈도 꾸지 말라는 소리밖에 안되는 셈이다. 여러모로 선출이 할 만한 발상도 발언도 아니라는게 중론.
무등산 날씨도사 라고 한다
정우영 : 우천으로 인해 야구가 없던 화요일이 지나가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야구하기 좋은 날씨로 돌아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광주 챔피언스 필드입니다
이순철 : 안녕하십니까
정우영 : 중계에 앞서 어제 SNS를 통해 작은 해프닝이 있었는데요. 조금 더 신중한 행동을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중계 시작하겠습니다
이순철 : 무슨 해프닝이요?
정우영 : 어제 우천 취소 관련해서 SNS에 KBO가 너무 쉽게 경기 취소를 결정한다는 언급을 했는데 이후 비가 굉장히 쏟아지는 바람에....
이순철 : KBO의 우천 취소 결정만큼 우영씨가 SNS에 글 올리는 속도도 빠르던데요? 허허. 사실 어제 비가 잠깐 그치긴 했지만 저는 쏟아질 걸 알고 있었어요 허허허
정우영 : 네? 어떻게 그걸 아셨는지
이순철 : 무등산을 보면 알아요~ 무등산 뒤를 보니까 구름이 넘어오는 게 보이더라구요. 정우영 캐스터랑 저랑 다른 게 뭔지 알아요? 저는 광주에서 태어나고 광주에서 생활하고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경기를 했잖아요? 그러니까 딱 보면 알죠.
정우영 : 그런 정보는 저도 알려주셨으면 제가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순철 : 사실 우영씨 말이 틀린 게 아니라 맞는 말이에요. 제가 주간야구에서 언급했듯이 KBO의 경기취소 결정이 빠른 건 사실이에요. 이렇게 가다가는 12월에 한국시리즈가 열린다라고 우스갯소리로 하던 게 사실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제 같은 경우에는 빠른 결정이 나쁜 게 없었다고 봅니다.
정우영 :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3시간을 기다릴 필요없이 맑은 날씨입니다. 무등산 날씨도사 이순철 해설위원과 함께 하겠습니다. 경기 시작됩니다.
- 1980~90년대에 선수 생활을 했고, 팀 내에서도 군기반장 역할을 했지만, 의외로 구타나 폭력에는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14] 고3 시절 학교폭력 논란이 있는 안우진의 경우 아예 방출시켜버려야 한다고 할 정도로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본인도 선수 시절 코치들의 구타를 참지 못해 항명까지 한 적도 있어서 그렇고, 실제로 백인수(舊 백인호)의 증언을 들어도 "차라리 그냥 한대 맞으면 속 편한데 쉬지 않고 연습을 시켰다"라고 하는 것을 보아 웬만하면 물리적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해태 타이거즈라는 이미지와 선배인 김성한, 그리고 한참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범죄자가 팀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때문에 여전히 그도 후배들에게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카더라가 있을 수 밖에 없다.
- 경기가 끝난 후 다른 중계진들은 중계차 앞에서 잠깐 모였다 퇴근하는 반면, 이순철 해설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퇴근하기 때문에 싸인이나 사진 요청이 어렵다. 단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나 창원 NC 파크의 경우 얘기가 다를 수도 있다.
- 2020년 6월 26일, 아들 이성곤이 프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한 날이 있어 아들의 홈런을 분석하는 날이었다. 무뚝뚝하게 아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던중 베이스볼 S에서 본인의 현역 시절과 아들이 뛰던 모습 본인이 홈런을 치고 뛰는 모습과 아들이 홈런을 치고 뛰고 있는 모습을 교차하는 모습과 이성곤의 포부인 "아버지 그 거대한 그림자에 가까이"라는 마지막 문구를 보자 기존의 선수들을 냉혹하게 비판하던 이순철이 뭉클한 표정을 보였다. 팬들도 그 냉혹한 순페이도 자식을 걱정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며 뭉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 2020년 7월부터 유튜브 '순Fe' 채널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어째 올리는 영상마다 반대로 되고 있어 순펠레(...)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래는 대표적인 예시.
- 2021년 1월 3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회장에 당선되어도 해설 일을 병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일각에서 우려를 보이고 있으나 자신은 문제 없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 이종훈 현 부회장에게 밀려 낙선했다.
5.1. 축구 관련 [편집]
- 최고의 축구선수로는 손흥민을 꼽았다. 보통은 차범근 전 감독을 뽑는게 일반적이지만 차범근에게는 없는 기교도 많이 가지고 있는 손흥민이 더 낫다고...
6. 사건사고/논란 [편집]
6.1. 김재환 상 수여 발언 논란 [편집]
김재환의 주홍글씨, 앞장서 지우려 하는 야구계 선배들
2018년 11월 29일 일구회 최고타자상을 금지약물 복용을 했던 김재환이 수상했는데 이순철은 김재환에게 상을 주면서 “그렇다고 김재환에게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다음 해의 약물 파동 사건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2018년 11월 29일 일구회 최고타자상을 금지약물 복용을 했던 김재환이 수상했는데 이순철은 김재환에게 상을 주면서 “그렇다고 김재환에게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다음 해의 약물 파동 사건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7. 연도별 성적 [편집]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85 | 99 | 369 | .304 | 112 | 18 | 5 (3위) | 12 | 50 | 67 (1위) | 31 (3위) | 37 | .477 | .365 | |
1986 | 88 | 319 | .257 | 82 | 14 | 3 | 14 (5위) | 40 | 53 | 19 | 33 | .451 | .325 | |
1987 | 98 | 265 | .215 | 57 | 12 | 1 | 6 | 29 | 34 | 12 | 29 | .336 | .291 | |
1988 | 108 | 406 | .313 | 127 (2위) | 26 (1위) | 2 | 13 | 52 | 81 (1위) | 58 (1위) | 64 (2위) | .483 | .404 | |
1989 | 101 | 373 | .241 | 90 | 13 | 1 | 12 | 46 | 58 | 24 | 52 | .378 | .333 | |
1990 | 114 | 381 | .249 | 95 | 20 | 0 | 12 | 51 | 65 | 26 (2위) | 64 (4위) | .396 | .356 | |
1991 | 115 | 434 | .276 | 120 | 21 | 3 | 17 | 50 | 83 (3위) | 56 (1위) | 69 | .456 | .373 | |
1992 | 122 | 492 | .309 | 152 (1위) | 22 | 3 | 21 | 76 | 101 (2위) | 44 (1위) | 67 | .494 | .389 | |
1993 | 102 | 367 | .253 | 93 | 12 | 3 | 11 | 44 | 47 | 29 (3위) | 51 | .392 | .341 | |
1994 | 85 | 314 | .322 | 101 | 19 | 2 | 8 | 54 | 42 | 18 | 34 | .471 | .386 | |
1995 | 96 | 328 | .201 | 66 | 12 | 2 | 7 | 30 | 36 | 13 | 36 | .314 | .278 | |
1996 | 111 | 351 | .219 | 77 | 13 | 2 | 5 | 41 | 49 | 26 (5위) | 44 | .311 | .304 | |
1997 | 77 | 216 | .213 | 46 | 6 | 2 | 5 | 28 | 31 | 12 | 26 | .329 | .296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8 | 72 | 160 | .213 | 34 | 9 | 1 | 2 | 21 | 21 | 3 | 19 | .319 | .291 | |
KBO 통산 (14시즌) | 1388 | 4775 | .262 | 1252 | 217 | 30 | 145 | 612 | 768 | 371 | 625 | .411 | .348 | |
[1] 음력으로는 1961년 4월 18일이다.[2] 前 대한민국 승마 국가대표이자 연세대학교 동문이다.[3] 現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 선수이다. 고등학생 때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지명 거부 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후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로 입단했다가 2차 드래프트때 친아빠가 선수생활 마지막을 보내던 삼성 라이온즈로 옮겨서 서서히 포텐터트릴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또 부모님과는 연세대학교 선후배 관계이기도하다.[4] 198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수상하였다.[5] 이순철 이후 타이거즈 소속의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는 1993년의 이종범, 2002년의 김진우, 2006년의 한기주, 2009년의 안치홍, 2019년 전상현이 있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종범의 경우 입단 동기 중에 또다른 신이 있어서 놓쳤고 시즌 탈삼진왕이었던 김진우는 당해 플레이오프에서의 부진 여파와 신인왕 경쟁자였던 현대의 마무리 조용준의 활약도 돋보인 점이 걸렸다. 10억 기대주 한기주같은 경우에는 서정환 감독에 의한 혹사 속에 꾸역꾸역 10승을 거뒀지만 하필 그 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먹어치운 미친 괴물이 나오는 바람에 신인왕이 날아갔다. 안치홍 같은 경우에는 전반기까진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으나 체력적 문제로 후반기에 부진했으며 경쟁자인 중고신인 이용찬이 세이브왕에 오르면서 그 쪽으로 쏠렸다. 전상현의 경우가 가장 석연찮은데 경쟁자들보다 WAR 등 여러 스탯이 더 높았음에도 결국 LG 정우영에게 신인왕을 내줬다.[6] 이 별명에서 유래해 유튜브 채널 이름을 지었다.[7] 일본인 이름 같다며 놀리는 사람도 있다. 미즈노 슌페이 같기도 하다.[8] 비슷한 예로 강페이가 있고 그보다 훨씬 전에는 강병Fe라는 별명도 있었다.[9] 그 외 바로 뒤에 5년간 신의 활약을 보인 이종범과 홈런왕출신 팀선배 김성한도 있었다. 야수 WAR 10걸에 해태 선수가 5명이나 포진되었으니 해태의 전력이 얼마나 사기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투수진에는 이순철의 2.5배인 선동열 등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0] 시즌중 자진사퇴.[11] 다만 후술하겠지만 야구만 좋아한 게 아니라 모든 운동을 좋아했다. 원래 야구부보다 축구부에 먼저 입부했던 사람인지라...[12] 사실 김영식씨는 김성근 감독과 더 닮았다.[13]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생강차는 감기에 마시면 목에 좋은, 목 관리에 적합한 음료다.[14] 어떻게 보면 이유는 간단한데, 아들도 야구선수기 때문. 운동계에 만연한 구타 문화 속에서 아들이 고생했을 것을 아버지인 본인도 충분히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15] 다음날 경기 해설 때 '어제 김규성 선수와의 인터뷰를 본 KIA 팬들이 달달하다고 하던데 달달하다는 게 무엇이냐'며 정우영에게 묻기도 했다. 정우영은 스윗하다는 뜻이라며, 이순철 해설위원님이 저를 대하실 때와 같은 것이라고 대답.[16] 1997년 한국시리즈 때는 엔트리에 들지 못했으나 반지는 받았다고 한다. 당시 해태 선수들은 구단이 아닌 자체적으로 돈 걷어서 만들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에 본인 돈을 내고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17] 비슷한 경우로는 이순철과 주간야구를 함께하는 안경현이 있다. 초등학생이던 70년대 후반에 흔치 않던 피겨스케이팅(?)부에 들어갔다가 야구부 선생님의 유혹으로 피겨 운동이 끝나고 야구부에서 타격을 몇 번 해보다가 옮겼다고 한다. 안경현 자신은 자신이 살던 지역이 강원도라서 학교에 그런 운동부가 있었다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를 밝히면서 자신이 '김연아 선수의 길로 갈 뻔 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7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90년대 중후반까지도 스케이트는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타는 것이었고 유료 빙상장들도 겨울 한정 운영하는 야외 시설이었다. 그래서 백인천의 학창 시절에서 보듯 한국 스케이트는 겨울에 그나마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서울 경기나 강원도 철원 등지를 중심으로 발원했다. 지금도 경기 북부나 철원 등에 스케이트나 컬링 등 빙상 명문 학교가 꽤 된다. 안경현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야구는 멀고, 스케이트는 겨울이면 가까워지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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