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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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내용 [편집]
국내에 있는 왜성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본래의 모습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왜성이긴 하지만, 국내에 남은 왜성 가운데 서생포왜성과 더불어 그나마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뿐이지, 상당수가 헐린 상태다. 사실 당연한 게 왜군이 만든 성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임진왜란 끝나고 조선에서도 군대가 배치하기에는 맞지 않으니[2] 그냥 헐어서 다른 건물 재료로 쓰던지 했으니 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게다가 조선군이 주둔한다고 해도 왜군이 지은 석축은 조선군 성에 쓰인 석축보다 빠르게 올릴 수는 있지만 내구력 자체는 약해 시간이 지나면서 비교적 빨리 허물어지는 편이었기에 왜성을 재활용하여 세운 조선군 읍성도 오래갈 수 없었다.
순천왜성은 일제강점기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서 대한민국의 사적 제49호로 지정되어 있었다.[3] 하지만 우리 문화재라기 보다는 일본의 문화재에 가까운 왜성을 굳이 국가 지정 사적으로 보호해야하느냐는 비판의 소리가 점차 커지자 문화재청은 1997년 1월 1일자로 순천왜성을 사적에서 지정해제하면서 지방 문화재로 지정하기를 권고하였다. 이에 순천왜성은 1999년 2월 26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로 재지정됐다.
순천왜성은 일제강점기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서 대한민국의 사적 제49호로 지정되어 있었다.[3] 하지만 우리 문화재라기 보다는 일본의 문화재에 가까운 왜성을 굳이 국가 지정 사적으로 보호해야하느냐는 비판의 소리가 점차 커지자 문화재청은 1997년 1월 1일자로 순천왜성을 사적에서 지정해제하면서 지방 문화재로 지정하기를 권고하였다. 이에 순천왜성은 1999년 2월 26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로 재지정됐다.
3. 성 구조 [편집]
4. 바깥고리 [편집]
5.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 [편집]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낮은 구릉지대에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성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장 소서행이 일본군의 호남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하여 쌓은 왜성이다.
순천왜성은 왜교 또는 예교(曳橋)라 하며 일본사람들은 순천성이라 부르고 있고, 1997년 1월 1일 국가 사적 제49호에서 해제되기 전까지는 ‘승주 신성리성’으로 불려왔다.
성벽은 외성 3첩과 내성 3첩으로 쌓았는데 내성만 그 흔적이 분명하고 외성은 분명치 않으며, 성 주위에는 연못을 둘러 판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598년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과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군 사이에 최대의 결전이 벌어진 곳이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둔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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