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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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송(宋)나라 26대 국군 평공 平公 | |||
자(子) | |||
송(宋) | |||
성(成) | |||
아버지 | 송공공(宋共公) 자하(子瑕)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532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575년 ~ 기원전 532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송 공공이 죽은 뒤 화원은 우사, 어석은 좌사로 있었다. 사마인 탕택이 태자 비를 죽이고 화원도 죽이려 했으나 화원이 진(晉)나라로 달아나려고 하다가 어석이 말리자 반격을 시도해 탕택을 죽이고, 탕택의 일족이 초나라로 달아났다. 그리고 화원이 송 공공의 작은 아들인 공자 성을 세우니 그가 바로 송 평공이다.
송 평공 3년(기원전 573년), 초공왕이 송나라의 팽성을 쳤다. 그러자 송 평공은 좌사 어석을 그곳에 봉했다.
송 평공 4년(기원전 572년), 제후들과 함께 어석을 죽이고 팽성을 되찾았다.[1]
송 평공 30년(기원전 546년), 미병의 회맹 혹은 미병지맹이 당시에 일어났다.
송 평공 35년(기원전 541년), 초나라 공자 위(圍)가 그 왕인 겹오를 죽이고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초영왕(楚靈王)이다.
송 평공 44년(기원전 532년), 송 평공이 죽고 아들인 자좌좌자가 아니다.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송 원공이다.
송 평공 3년(기원전 573년), 초공왕이 송나라의 팽성을 쳤다. 그러자 송 평공은 좌사 어석을 그곳에 봉했다.
송 평공 4년(기원전 572년), 제후들과 함께 어석을 죽이고 팽성을 되찾았다.[1]
송 평공 30년(기원전 546년), 미병의 회맹 혹은 미병지맹이 당시에 일어났다.
송 평공 35년(기원전 541년), 초나라 공자 위(圍)가 그 왕인 겹오를 죽이고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초영왕(楚靈王)이다.
송 평공 44년(기원전 532년), 송 평공이 죽고 아들인 자좌
[1] 그 이유는 어석이 팽성에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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