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제석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 孫製錫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1931년 경상북도 영일군 출생으로 경북중학교[1] 및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1959년 신설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교수로 부임하였다. 대학에서는 국제기구론을 담당하였으며, 1960~70년대에 걸쳐 해외 대학 방문학자로 파견을 가거나, 적십자 등 각종 국제회의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였다. 1979년에는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당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학장을 맡고 있던 그는 1982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으로 적을 옮기게 된다. 이후 1985년에는 권이혁의 뒤를 이어 문교부 장관에 기용되었다. 장관 시절의 그는,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일던 당시 정국에서 소위 학원 안정화를 담당해야 했으나, 재임 기간 중 6월 항쟁이 일어나는 등 시대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한편, 대학 관계 업무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대학에 정책적 개입을 수행해야 하는 교육 당국의 대표로서 당시 대학 교수진들로부터 학원의 자율성을 주장하던 학계에 있을 때와는 달리 개입 일변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퇴임 후에는 진각종 재단이 설립한 위덕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2016년 별세.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당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학장을 맡고 있던 그는 1982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으로 적을 옮기게 된다. 이후 1985년에는 권이혁의 뒤를 이어 문교부 장관에 기용되었다. 장관 시절의 그는,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일던 당시 정국에서 소위 학원 안정화를 담당해야 했으나, 재임 기간 중 6월 항쟁이 일어나는 등 시대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한편, 대학 관계 업무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대학에 정책적 개입을 수행해야 하는 교육 당국의 대표로서 당시 대학 교수진들로부터 학원의 자율성을 주장하던 학계에 있을 때와는 달리 개입 일변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퇴임 후에는 진각종 재단이 설립한 위덕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2016년 별세.
3. 가족 [편집]
대한불교진각종의 창종자 손규상의 장남.
[1] 당시 6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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