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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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선수 경력 [편집]
울산현대고등학교와 울산대학교를 거쳐 1999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울산 현대에 지명되었다.[1] 울산에서는 주로 주전 투톱이던 김종건 혹은 장철민, 안홍민 등의 윙어와 교체하여 경기 막판 공중전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졸 신인으로서 1순위 드래프티들이 흔히 첫해부터 주전으로 발탁되는 데 비하면[2] 소소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다 2002년에 상무로 입대를 하였고, 2003 시즌에는 상무가 K리그에 참가함으로써 프로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는 조재진과 이동국이 부동의 투톱을 꿰어찼기 때문에 상무에서도 교체로 출전하거나 간혹 2군[3]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제대 후 전북에 입단했다가 2005년 여름 시즌에 수원 삼성으로 입단했다. 문제는 이 해의 수원이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빈공 속에 하위권으로 처졌다는 것으로, 팀내 최다 득점자가 센터백인 마토 네레틀랴크였던 데서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간판 골잡이 나드손이야 부상이다 치고, 복귀한 산드로도 삽을 푸는 상황. 그 중에서도 아예 득점이 없는 손정탁이 묘하게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다 2002년에 상무로 입대를 하였고, 2003 시즌에는 상무가 K리그에 참가함으로써 프로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는 조재진과 이동국이 부동의 투톱을 꿰어찼기 때문에 상무에서도 교체로 출전하거나 간혹 2군[3]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제대 후 전북에 입단했다가 2005년 여름 시즌에 수원 삼성으로 입단했다. 문제는 이 해의 수원이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빈공 속에 하위권으로 처졌다는 것으로, 팀내 최다 득점자가 센터백인 마토 네레틀랴크였던 데서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간판 골잡이 나드손이야 부상이다 치고, 복귀한 산드로도 삽을 푸는 상황. 그 중에서도 아예 득점이 없는 손정탁이 묘하게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2.1. 손정탁 클럽 [편집]
풋케위키 문서
이후 디시인사이드 국내축구 갤러리나 사커월드 등 국내 축구 커뮤니티를 통해 손정탁과 같이 빈약한 득점 생산력을 자랑하는(?) 장신 공격수들을 묶어서 까는 '손정탁 클럽'[4]으로 꼽았다. 시즌별로 부진한 선수, 그것도 출장이 많으면서 득점이 적은 선수를 꼽기 때문에 전통적인 단골 멤버(?) 박성호, 삼동현[5]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나 이동국도 걸리기도 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와 국축갤이 타 커뮤니티에 밀려 뜸해지면서 요새는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손정탁은 2006년 수원에서 방출된 후 창원시청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은퇴했다. 역대 기록은 K리그(컵대회 포함) 106경기 출장(88경기 교체) 11득점 7도움으로, 34출장 4득점을 올린 광주 상무 2003 시즌이 커리어 하이다.
이후 디시인사이드 국내축구 갤러리나 사커월드 등 국내 축구 커뮤니티를 통해 손정탁과 같이 빈약한 득점 생산력을 자랑하는(?) 장신 공격수들을 묶어서 까는 '손정탁 클럽'[4]으로 꼽았다. 시즌별로 부진한 선수, 그것도 출장이 많으면서 득점이 적은 선수를 꼽기 때문에 전통적인 단골 멤버(?) 박성호, 삼동현[5]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나 이동국도 걸리기도 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와 국축갤이 타 커뮤니티에 밀려 뜸해지면서 요새는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손정탁은 2006년 수원에서 방출된 후 창원시청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은퇴했다. 역대 기록은 K리그(컵대회 포함) 106경기 출장(88경기 교체) 11득점 7도움으로, 34출장 4득점을 올린 광주 상무 2003 시즌이 커리어 하이다.
3. 지도자 경력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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