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래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복무 | |
기간 | 1949년 ~ 0000년 |
임관 | 육군사관학교 9기 |
최종 계급 | |
최종 보직 |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 |
주요 보직 | 초대 제1 및 제2 기갑여단 여단장 육군기갑학교 교장[1] 제25보병사단 사단장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2] 주미한국대사관 공사 제9대 주말레이시아 대사[3]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49년 육군사관학교 9기에 입학한 이듬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임진강 문산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복부 관통상을 입은 손 장군은 후방에서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이 조직한 미군 제10군단 예하 특수작전단(Special Activities Group) 직속 특공대대(대대장 육사 5기 배동걸 소령)의 작전장교 겸 제2중대장(중위)로 참전하여 300여 명의 독립대대원으로 경북 문경군 동로면 "적성리 전투"(1.4후퇴 당시, 1951년1월12일~15일)에서 북한군 2군단 10사단 예하연대 3000여명과 싸워 전멸(1250여 명 사살, 80여 명 생포)시켰다. 그에 비해 아군의 피해는 전사 9명, 부상 35명이었다.
존경받는 한국전쟁의 영웅이며 기갑전의 베테랑으로 기갑여단 창설의 산파역을 하였다.
당시 복부 관통상을 입은 손 장군은 후방에서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이 조직한 미군 제10군단 예하 특수작전단(Special Activities Group) 직속 특공대대(대대장 육사 5기 배동걸 소령)의 작전장교 겸 제2중대장(중위)로 참전하여 300여 명의 독립대대원으로 경북 문경군 동로면 "적성리 전투"(1.4후퇴 당시, 1951년1월12일~15일)에서 북한군 2군단 10사단 예하연대 3000여명과 싸워 전멸(1250여 명 사살, 80여 명 생포)시켰다. 그에 비해 아군의 피해는 전사 9명, 부상 35명이었다.
존경받는 한국전쟁의 영웅이며 기갑전의 베테랑으로 기갑여단 창설의 산파역을 하였다.
3. 여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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