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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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소방구는 양나라의 효원제 소역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 남안현후(南安縣侯)로 봉해졌으며 이후 태청(太淸) 연간 초에 사지절(使持節), 독상영계녕성합라7주제군사(督湘郢桂寧成合羅七州諸軍事), 진남장군(鎭南將軍), 상주(湘州) 자사를 지냈다.
소역이 황제가 된 이후 승성(承聖) 원년(552년)에 소방구는 왕태자로 책봉되었고 이때 이름을 원량(元良)으로 고쳤으며 이후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이후 서위(西魏)의 군대가 형주 강릉을 공격해오자 소역이 여기에 항전하였으나, 서위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고 강릉성이 함락된 이후 결국 소방구는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다.
소방구는 총명하고 빼어났으며 효원제의 풍격을 지녔지만 흉폭하고 시기심이 많았다고 한다. 동생인 경제(敬帝)가 즉위한 이후 소방구는 민회태자(愍懷太子)로 추시되었다.
처음에 남안현후(南安縣侯)로 봉해졌으며 이후 태청(太淸) 연간 초에 사지절(使持節), 독상영계녕성합라7주제군사(督湘郢桂寧成合羅七州諸軍事), 진남장군(鎭南將軍), 상주(湘州) 자사를 지냈다.
소역이 황제가 된 이후 승성(承聖) 원년(552년)에 소방구는 왕태자로 책봉되었고 이때 이름을 원량(元良)으로 고쳤으며 이후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이후 서위(西魏)의 군대가 형주 강릉을 공격해오자 소역이 여기에 항전하였으나, 서위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고 강릉성이 함락된 이후 결국 소방구는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다.
소방구는 총명하고 빼어났으며 효원제의 풍격을 지녔지만 흉폭하고 시기심이 많았다고 한다. 동생인 경제(敬帝)가 즉위한 이후 소방구는 민회태자(愍懷太子)로 추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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