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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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1396년 건설되어 광희문과 함께 일반적인 통행로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소덕문(昭德門)이었지만, 1744년 영조 때 문을 개수하면서 소의문(昭義門)으로 고쳤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처형장 중 한 곳이었는데 특히 1800년대 중반 이후 천주교 박해가 극심하던 시절 새남터 성지, 절두산 성지 등과 더불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특히 새남터 성지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등 사제들이 다수 순교한 것과 달리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는 평신도들이 주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에 천주교 순교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돼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4년 한국을 찾았을 때 이곳을 참배하며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했다. 인근 충정로의 약현성당에 그 기념관이 있으며, 서소문 공원 내에 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소의문 지역에 도로와 경의선 철도를 낸다는 명분으로 소의문을 헐어버렸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처형장 중 한 곳이었는데 특히 1800년대 중반 이후 천주교 박해가 극심하던 시절 새남터 성지, 절두산 성지 등과 더불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특히 새남터 성지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등 사제들이 다수 순교한 것과 달리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는 평신도들이 주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에 천주교 순교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돼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4년 한국을 찾았을 때 이곳을 참배하며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했다. 인근 충정로의 약현성당에 그 기념관이 있으며, 서소문 공원 내에 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소의문 지역에 도로와 경의선 철도를 낸다는 명분으로 소의문을 헐어버렸다.
3. 헐린 이후 [편집]
그렇게 1914년 헐려버린 이후 이 지역은 "서소문이 있었대" 정도만 남게 된다.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대략 지금의 서소문 근린공원 주변 경찰청 앞 사거리(서소문고가차도)에서 서소문로를 따라 시청방향으로 한 블럭 더 들어간 샛길 분기점(고가차도 시점)이 소의문이 있었을거라 추정되는 지역이다.[1] 소의문의 이름은 서소문로라는 도로명주소로 남았으며, 경의선에 서소문역과 서소문 건널목이 있었다는 것만 남아있다. 비슷한 예가 바로 돈의문 즉 서대문이다. 서대문도 마찬가지로 일제에 헐리고, 터를 알리는 알림석만 있다. 실제로 있는 터는 다 도로가 들어서 있다. 그나마 남은 것은 서대문구라는 지명 뿐이다.
소의문 터에 있던 재활용쓰레기처리장과 공영주차장 부지를 재건해, 2019년 6월 1일에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소의문 터에 있던 재활용쓰레기처리장과 공영주차장 부지를 재건해, 2019년 6월 1일에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개관하였다.
4.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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